응급의학과 의사 3억 민사 손해배상 → 대법원 형사 실형 → 면허 취소 위기까지

전공의 시절 과실로 인한 대가 지나치게 '가혹'…환자 측 책임 범위 넓은 민사 이후 형사 진행해 전략적 합의금 요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현직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전공의 시절 흉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에게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해당 의사는 일명 '의료인 면허 취소 강화법'이라 불리는 개정 의료법에 따라 면허 취소 대상이 되면서 민사 손해배상에 이어 형사처벌 나아가 면허 취소 위기에 처했다. 

다양한 환자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응급실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일하는 의사에게 범죄 유무를 묻는 형사소송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 속에 의사 한 명이 귀한 필수의료 위기 현실에서 이와 같은 의료인 형사 처벌 경향은 필수의료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업무상과실·의료법 위반 인정…모근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 선고받은 의료인, '면허 취소 대상'

15일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응급의학과 의사 A씨가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업무상과실치상과 의료법 위반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최종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A씨가 흉부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에게 '흉부CT'와 같은 적극적인 검사를 하지 않은 채 퇴원시켜 대동맥박리로 뇌병변장애를 일으킨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A씨가 흉부 CT 등 추가적인 진단검사를 진행하지 않은 업무상과실과 경과기록서에 흉부 CT 검사를 권유했다는 기록이 허위 사실로 들어난 점 등을 들어 의료법도 위반했다고 봤다.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은 민사소송에 승소해 A씨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은 후 형사소송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A씨가 민사 손해배상 이후 형사처벌 실형이라는 이중고에 더해 최근 개정된 의료인 면허 취소 강화법에 따라 면허가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11월 20일부터 의료인은 모든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가 취소된다. 여기에는 집행유예 및 선고유예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물론 고의성 없는 의료사고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제외되지만, A씨가 의료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재판부가 A씨에게 의료법 위반죄에 대해서도 유죄로 판단한 것으로 나타나 A씨는 면허 취소 대상이 됐다.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A씨의 면허가 취소된다면 A씨는 집행유예 2년 이후 최소 1년에서 최대 3년까지 면허 재발부가 금지된다. 적어도 A씨는 3년 동안 의료업을 할 수 없고, 이후에도 교육프로그램 등을 이수해야 면허가 재교부된다.

실제로 A씨는 이미 병원을 그만두고 6개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금고형 이상 판결이 확정되면 곧바로 복지부에서 면허 취소 행정 조치가 취해질 것을 우려해 미리 병원을 그만 둔 것이다.

민사 승소→형사 고소…민사에서 인정된 과실과 인과관계 없음 입증해야 해 부담 커져

이번 사건의 무서운 점은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는 민사 판결을 근거로 피해자들이 형사 고소를 진행하는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보통 민사는 인과관계나 과실을 추정해 의사의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민사와 형사는 법리가 달라 구별되기 때문에 민사에서 책임이 인정됐다고 해서 형사에서 반드시 유죄가 인정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최근 의료소송의 경향이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는 민사에서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면, 이를 근거로 환자들이 형사 고소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 변호사는 "민사는 의사의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기 때문에 손해배상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형사소송이 되면 입증 책임이 완전히 전환된다는 점이다. 재판부도 민사에서 과실이 입증됐으니 의사가 과실과의 인과관계가 없음을 입증하라고 하기 때문이다"라며 "의사들이 자신에게 과실이 없다는 점을 스스로 소명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형사소송이 힘든 이유는 이처럼 의사가 직접 자신의 무죄를 소명해야 한다는 부담에 더해 직접 법정에 나가야 하고,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이 나더라도 1심, 2심을 진행하는 동안 엄청난 압박이 있고, 과실치사 사건의 경우 환자 측이 손해배상을 받았음에도 합의를 안 해주면 법정 구속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현 변호사는 "이렇게 되면 재판을 받아야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죄를 소명하고 입증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부담이 된다. 전반적으로 필수의료 기피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전했다.

손해배상 후 고액의 형사합의금 요구…고의성 없는 의사에 형사기소 가능한 것 자체 '문제'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이번 사건 외에도 유사한 사건들이 굉장히 많다. 대부분 병원이 돈을 주고 합의를 하기 때문에 노출되지 않을 뿐"이라고 전했다.

이 회장은 "이번 사건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10년 동안 소송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전공의 1년차 때 만난 환자 한 명 때문에, 흉부 CT를 찍지 않은 것 하나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다"며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응급실에서 최선을 다했던 의사가 정말 강도와 비슷한 죄를 지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의 A씨는 전공의 당시 걸린 민사소송에서 다소 안일하게 대처했고, 그 과정에서 3억원대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했다. 문제는 민사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피해자들이 이 과정에서 얻은 증거와 과실 인정 부분을 이용해 형사소송을 제기했고, 그러한 부분들이 모두 기정사실로 인정돼 버렸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미 민사에서 억대의 손해배상을 받았음에도 형사 고소가 진행되는 이유는 뭘까? 의료계는 개인적 원한보다는 고액의 형사 합의금이라는 금전적인 이유가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해당 사건에서 A씨는 고액의 합의금을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회장은 "의료소송이 민사에서 형사로 넘어가는 이러한 관행은 제도적인 문제라고 본다.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일하는 의사를 형사소송으로 입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형사 소송은 범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으로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목적이라는 점에서 의사를 너무나 쉽게 형사 기소할 수 있는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아직 젊은 나이의 의사가 최소 3년간 의사 면허를 재교부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고, 재교부도 신청자의 3~40%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다. A씨는 만약 면허를 재교부 받더라도 응급실에서는 다시는 일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며 "이번 사건으로 불필요한 의료소송이 더욱 늘어나고 의사들은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버리는 후유증을 온 나라가 떠안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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