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학회 "조현병 환자 치료시기 중요, 정신복지법 재개정해야"

"경찰 살인사건으로 조현병 환자 낙인찍지 말아야"

사진 : 정신질환자 내용을 담은 영화 '날 보러 와요'의 한장면

[메디게이트뉴스 황재희 기자] 대한조현병학회가 최근 경북 영양군에서 조현병 환자가 경찰을 살해한 사건을 두고, 조현병 환자에 대한 낙인이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학회는 12일 입장을 담은 성명서를 배포하고 "이번 사건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그러나 이로 인해 조현병 환우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가혹하게 확산되는 것에는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지난 9일 경북 영양군에서 경찰관 1명이 조현병 진단으로 입원한 병력이 있는 40대 남성의 난동을 제지하다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회는 "현재까지 경찰 조사가 진행 중으로, 이번 사건이 조현병으로 인한 범죄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며 "그러나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해당 남성은 조현병 진단으로 입원한 병력이 있고, 과거에 병적 상태로 추정되는 시점에서 살인을 저지른 경력이 있다. 또 최근 정신병원을 퇴원한 후에는 치료를 거부하고 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학회는 "지난번 강남역 살인사건도 그렇고, 일련의 조현병 환자들의 살인과 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것으로 인한 조현병 환우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확산되는 것에는 상당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조현병 증상에는 환청과 망상, 기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 등이 있다. 학회는 "조현병 환자들 대다수의 행동은 온순하며, 일부 환자에게서만 급성기에 공격성이 나타난다. 또 극히 일부이기는 하나 조현병에서의 폭력적 행동은 치료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발생하며, 이외에도 알코올이나 마약의 남용, 무직상태, 폭력 피해의 경험, 주변에서의 폭력 사건들에 노출되는 경우 등이 위험요인"이라고 강조했다.
 
학회는 "조현병 환자의 범죄 연관 폭력은 소수에 불과하며, 그 수도 일반 인구의 범죄율보다 높지 않다"며 "치료와 보살핌이 공격성 예방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이로 인해 다수의 조현병 환자들이 사회적 낙인으로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학회는 현재 개정된 정신보건복지법 등으로 인해 조현병 환자의 치료와 보살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하며, 해당 법을 재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회는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하다. 그나마 치료와 보살핌을 제공하던 곳이 정신의료기관이었으나, 지난해 5월 시행된 개정 정신보건복지법으로 인해 보살핌과 치료가 상당히 제한되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입원 치료의 필요성이나, 자·타해 위험이 있으면 보호의무자에 의한 비자의(강제) 입원이 가능했다. 그러나 정신보건복지법이 개정되면서는 앞으로는 두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만 비자의 입원이 가능하다.
 
더불어 비자의 입원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2주 이내에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국공립 정신병원 소속 전문의 1명 포함)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한다.
 
학회는 "이 법은 비자의 입원 요건을 강화하고, 퇴원을 촉진함으로써 중증 정신질환자들에게도 인권을 보장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진료실과 지역사회의 현장에서는 입원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환자들마저 요건부족으로 입원하지 못해 적절한 시기에 치료가 제공되지 못하는 역기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학회는 "퇴원 기준도 증상 호전보다는 타해 위험성의 감소에만 방점이 맞춰져 있어, 조기 퇴원으로 병식 부재의 악순환과 퇴원 이후 치료가 연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학회는 "정신의료기관의 제한된 입원과 입원유지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프라가 우선 갖춰져야 한다"며 "외래치료명령제라는 법조항이 있으나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강제성과 보완책이 전무해 거의 시행된 예가 없다. 퇴원 이후 치료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환자에게도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지역사회의 정신보건 유관기관으로 연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학회는 현재의 법은 환자의 치료를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가 모두 떠안게 되는 구조이며, 국가가 짊어져야할 필요한 책임이 빠져있다고 설명했다. 전국에 많은 정신건강복지센터, 사회복귀시설, 주거시설, 직업재활시설 등 조현병 환우들을 위한 지역사회와 국가의 노력이 있긴 하지만, 지역사회에 머물고 있는 환자들의 치료와 복지를 위해서는 현저히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학회는 "정신질환 특성상 젊은 시기에 발병해 만성화되면 평생에 걸쳐 질환에 압도된다. 따라서 환자들에 대한 책임을 가족에게만 전가할 수 없다"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늙은 노모들이 조현병을 앓고 있는 중년 자제의 노후에 대한 걱정으로, 진료실에서 한숨을 쉬고 돌아가는 현장을 자주 목격한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회는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자살 예방, 재난 정신건강, 정신건강전달체계 개선, 치매 등 4가지를 포함하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사회적 관심이 높은 조현병을 포함한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대책은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국가의 노력이 있어야 안전한 공간에서 아프지 않은 이들과 어울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국가는 보살핌과 치료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기 위한 정신건강복지법 재개정과 인프라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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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희 기자 ([email protected])필요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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