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 판단에 따른 비급여 진료인데 부당이득 주장…실손보험사 횡포에 제동 걸어야

[칼럼] 좌훈정 대한개원의협의회 기획부회장·대한의원협회 보험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한마디로 횡포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건강보험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보장하겠다'며 '돈 걱정 말고 안심하고 치료 받으시라'는 광고로 신나게 보험 상품을 팔아치우던 이른바 실손보험사들이 안면을 바꿨다. 이익이 날 때는 모르쇠하다가 손실이 나니 이제는 가입자 탓, 의료기관 탓, 보험제도 탓, 모든 것이 다 남 탓이다.

본격적인 사건은 이미 작년에 일어났다. 2020년 5월 S보험사가 개원의들에게 ‘비급여주사제 적정치료 협조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내 처방된 비급여주사제가 식약처 허가사항에 부합되지 않을 경우 실손보험금 지급이 거절될 수 있다고 통보했고, 심지어 비급여주사제에 대한 환자의 문의가 있는 경우 이런 사실을 안내하도록 요청(이라고 쓰고 요구)했다.

이에 대한개원의협의회(대개협)는 해당 공문이 보험가입자가 아니라 제3자인 의사들에게 발송돼 의사에게 의료행위와 무관한 보험금 지급 안내를 요구하고, 의학적 판단에 따른 진료영역에까지 개입해 개원의들에게 압력을 가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대개협은 재발방지 및 관계자 문책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금융감독원 민원을 통해 S보험사로부터 ‘영양제 투여 여부는 의학적 결정 사항이며 협조 여부 또한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은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아 최근 어느 보험사에서 의료기관의 비급여 치료를 문제 삼는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보험사는 의료기관들이 적응증에 어긋나는 ‘증식치료(프롤로테라피)’를 하고 있으니, 의료비 청구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다시 말해 의료기관에서 시행한 증식치료 등 비급여 행위의 적응증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발표한 행위정의 또는 일부 학회에서 발간한 진료지침(가이드라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해당 비급여 행위를 시행한 병의원들이 마치 의학적으로 잘못된 진료를 하거나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처럼 몰아세운 것이다.

급여기준이나 진료지침으로 삼을 수 없는 상대가치 행위정의

우선 누군지 모르겠지만 실손보험금을 어떻게든 지급하지 않기 위해서 공문의 근거로 삼은 상대가치 행위정의를 찾아낸 보험사 직원(또는 자문의사)의 안간힘은 인정하겠다. 다만 그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공문의 내용처럼 견강부회(牽强附會)한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의료수가의 기본이 되는 상대가치(相對價値)는 2000년대 이전에는 미국에서 도입된 것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다가, 2000년대 이후 우리 실정에 맞는 자원기준 상대가치(Resource Based Relative Value Scale; RBRVS) 개정을 위해서 연구가 시작됐다. 이에 지난 2003~2004년에 행위정의 및 의사업무량 상대가치개발 연구를 진행했는데, 당시 각 학회 간 행위정의 변이를 조정하는 작업이 이뤄졌고 이를 통해 의사업무량 상대가치를 산출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행위정의에 대한 학회 간 이견이 남아있고 이는 의사업무량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지 보험 급여기준이나 표준 진료지침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어서 그러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갖고 시작한 것이다(알기 쉬운 예를 들자면 어떤 시술의 행위정의에서 환자가 복와위 상태에서 하는 것으로 되어 있더라도 측복위에서 시술이 가능하거나 더 흔히 행해진다면 잘못된 시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심평원 상대가치 행위정의를 보험 기준이나 비급여 진료비의 지급 기준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얼마 전 H보험사는 안과병원 5곳을 상대로 백내장 수술과 관련해 과잉진료가 심하다고 주장하며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제소했는데, 실손보험사가 공정위에 병원을 제소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게다가 지난 달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는 비급여진료 심사 강화 등을 위해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 누수 방지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렇듯 현재 실손보험사의 의료기관 압박이 관계 부처를 가리지 않고 전(全) 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실손보험 문제의 책임은 보험사와 보험상품 자체에 있다

그러면 실손보험사들의 주장처럼 계속 늘어나는 실손보험금 지급이 환자의 도덕적 해이나 의료기관의 불법 또는 과잉진료 때문인가. 최근 까다로워진 심사로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환자(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보험사들이 보험상품을 팔기 전과 후가 너무나도 다르다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2000년대 초 각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상품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생각하고 앞 다퉈 출시한 뒤 과장 광고까지 섞어가면서 판매했다는 것이다. 실손보험 초창기에는 보험사들이 거둬들이는 보험료보다 지급하는 보험금이 적었음에도 아무소리 않고 있다가, 이제 보험금 지급이 많아지니 딴소리를 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지급률 예측이나 보장 설계를 잘못 한 상품 자체의 문제 또한 크다.

환자를 열심히 치료하고도 졸지에 죄인 취급을 받는 의사들의 분노는 더욱 크다. 의사는 의료의 전문가이지 보험의 전문가는 아니며, 실손보험 계약의 당사자는 더욱 아니다. 환자가 찾아오면 의학적인 판단 하에 의사로서 치료를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을 최대한 거절하기 위해 어떻게든 의사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는 것이 실손보험사들의 횡포의 본질이다. 이러한 보험사들의 작태를 감시하고 국민들에게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하는 금융감독원이 보험업계와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 누수 방지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또한 마찬가지다. 소액의 보험금은 복잡한 서류 없이도 간단한 영수증 첨부만으로 지급하면 해결될 문제다. 그럼에도 청구 간소화라는 미명 하에 의료기관이 진료 내역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으로 보내라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의료기관의 진료가 위축되게 하고 환자의 보험금 청구를 줄이겠다는 의도가 너무나도 뻔히 보이지 않는가. 

정부나 국회는 누구 편에 설 것인지

지금 우리 건강보험이 모든 것을 다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틈새를 메워주는 실손 보험의 유용성은 널리 인정받고 있다. 다만 보충적 건강보험으로서 실손 보험이 국민들의 의료 욕구(needs)를 제대로 충족시키려면 보험 가입자의 권리는 물론이고 의료공급자인 의사의 소신 진료를 충분히 보장해줘야 한다. 실손보험 도입 초기 금융당국이 보험사들의 폭리를 모르쇠 하다가 이제 와서 보험사들의 손실 보전을 위해서 가입자의 혜택을 줄이거나 의사의 진료에 규제를 가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나 국회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일이다.

이미 실손 보험사들은 보험료 인상이나 보장 축소, 가입 거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손실을 만회하고 있다(엄살을 부리면서 오히려 이익을 보고 있을지도). 금융당국은 의료 소비자의 편에 서서 보험사의 횡포를 저지하고, 국민들이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려면 의료기관들이 보험사들로부터 부당한 압박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수적인 임무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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