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신속·공정한 의료분쟁의 해결을 위해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의사와 환자 모두가 만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료분쟁에 대한 걱정은 커져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환자는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에 대해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고 있으며, 의사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의료분쟁이 증가함에 따라 분쟁해결에 소요되는 기간 및 직·간접적인 비용 또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최근 5년(2016년~2020년) 통계에 따르면, 매년 약 5만7000여건의 의료분쟁 상담이 이뤄지고 있으며, 매년 약 1400여 건의 조정·중재가 개시됐다. 조정·중재 개시 건수는 2016년 873건에서 2020년 1435건으로 약 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조정성립률은 86.6%, 5년간 누적 성립금액은 446억원에 달하며, 최고 성립금액은 5억1587만원이었다.
한국소비자원의 최근 5년(2016년~2020년) 통계에 따르면, 매년 약 760여 건의 의료서비스로 인한 피해구제 신청이 접수되고 있으며, 매년 약 550여 건의 의료분쟁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조정 성립율은 약 20%에 불과했다.
의료분쟁조정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책임보험이 도입되지 않아 환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료인은 보상에 대한 비용부담으로 인해 안정적인 진료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에는 악의적인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이 선의의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의사가 법정구속되는 사례가 발생해 의료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는 곧 조정·중재, 합의 등 비형사적 해결방안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고, 형사처벌 특례조항이 비현실적으로 규정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의료분쟁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첫째,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일률적으로 의료인의 과실 유무를 따져 형사처벌하는 문화, 검찰·경찰의 강압적인 수사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 지속적인 교육, 동료 평가 등을 통해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재발방지 방안 마련 등에 집중하는 것이 국민의 건강을 두텁게 보호하는 방법이다. 해외 다수의 국가에서 의료인의 면허관리를 엄격히 하고 있지만 정작 의료인의 형사처벌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정상적인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형법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같이 (가칭)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을 제정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의료사고의 경우 의료인을 형사처벌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형사처벌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주상태에서의 의료행위, 대리수술 등은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셋째, 필수의료 분야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지고 보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은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서만 특별히 무과실 보상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는 분만 과정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응급상황 또는 필수의료 영역과 같이 의료사고의 위험이 높은 영역으로 무과실 보상이 확대 적용돼야 할 필요가 있다.
넷째, 의료분쟁과 관련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환자와 의료인의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배상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에 대한 전향적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의료분쟁조정법의 틀 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의료배상공제조합의 역할과 배상 범위를 확대하고, 국가의 재정지원이 동반된다면 책임보험과 유사한 형태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의료분쟁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원칙과 인식이 필요하다. 의료분쟁 국가책임제는 환자의 신체·생명을 보호하고, 의료분쟁 해결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며, 환자와 의료인의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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