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티의 미국의사일기] 텍사스에서의 특별한 경험들

#4화. 하우디 텍사스

 


#4화. 하우디 텍사스

처음 전공의 지원을 할 때, 텍사스에서 미국살이의 첫 발을 떼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여러 곳에 한 번에 지원할 수 있지만 결국 내가 어느 병원으로 가게 될지는 마지막이 돼서야 알 수 있는 미국 특유의 전공의 선발 (“매치”) 시스템 덕분에 그전엔 아예 가본 적도 없었던 텍사스주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내가 레지던트를 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현재 텍사스주의 달라스(Dallas)라는 큰 도시에 위치해 있다. '텍사스'하면 흔히 다루어지는 끝없는 사막과 모래바람, 서부 영화의 카우보이와 총싸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대도시에 속하며, 정치적으로도 (비교적) 민주당, 거주하는 한인 인구도 북미 센서스 기준 8만 명에 달한다.

실제로 병원에서 아주 어린 나이에 이민을 왔거나 이곳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동료를 만나는 것도 꽤 흔한 일인데, 의무기록(EMR)에서 한국인처럼 보이는 이름을 보기만 해도 반가움에 속으로 짧은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사스는 텍사스, 지역색이 뚜렷한 이곳에 살면서 깨달은 이곳의 특색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먼저, 여느 미국의 도시가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인종이 분리되어 있는 편이라 병원이나 한인타운에 가지 않고는 아시아인을 마주하는 빈도가 훨씬 적다는 것 (병원 근무자는 전공의든, 간호사든 아시아인 비율이 상당히 높다).

거리에서 인종차별을 당한다거나 아시아인이라고 욕설을 듣는 일 등 '대놓고' 차별당한 경험은 많지 않지만, 조그만 아시아인 여자로서 내 말의 무게가 덩치 크고 나이 들어 보이는 백인 남자 동료들의 목소리보다 작게 들린다는 걸 실감할 때라든지, 악의는 없지만 인종차별적인 전제를 깔고 있는 순수한 호기심(“어디서 왔니? - 한국에서 작년에 온지라 덜 불쾌하긴 하다만, 미국에서 태어난 아시아계 동료들에게도 자주 있는 일이다”)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강조하건대 텍사스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겨우 일 년 달라스주에서 보냈던 내 경험 안에서도 보훈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빈도가 훨씬 높은 것을 보면 어떤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또 다른 지역색은 과격한 운전인데, 텍사스주 사람들은 운전을 제멋대로 하기로 유명하다. 안 그래도 넓은 차선에 쭉 뻗은 미국의 고속도로는 본인의 속도를 체감하기 어렵게 하는데, 주변 차들이 전부 제한속도 이상으로 달리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달라스 시내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80-90MPH(miles per hour, 대략 130-145km/h) 이상으로 달리는 차들이 다반사인데, 과속 카메라도 없고, 속도위반을 잡는 경찰을 보는 경우도 아주 드물다. 이제 거미줄처럼 얽힌 이 도시의 고속도로는 익숙해졌지만 - 달라스 하이 파이브 (Dallas Hi-Five Interchange) 도로가 대표적인 예시다 - 여전히 비가 내리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 이들 사이에서 운전을 하려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무엇보다 백인 마초 문화의 정수처럼 느껴지는 이곳의 반전 매력은 국민 음료가 '반반 (Half and half) 아이스티'라는 사실인데, 설탕이 첨가된 홍차 절반, 달지 않은 홍차 절반을 섞은 아이스티 음료다. 반신반의했는데, 간단하면서도 의외로 적당히 달착지근하고 시원해서 덩달아 계속 찾게 되는 음료. 서부 영화에서 본 게 전부인 채로 두려움 반 설렘 반을 안고 날아온 낯선 도시가 집이 돼간다는 건, 어느 새 냉장고에 1갤런(3.8L)짜리 아이스 티를 넣어두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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