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의 전제조건…선진국처럼 사회 보호와 안전 관점, 다양한 보건의료직과 형평성"

[칼럼] 안덕선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대안 간호법이 지난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대한의사협회 집행부가 소통이 잘 된다고 칭송을 하던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었는데, 아마도 정치적 소통은 아직도 일방통행이거나 공치사인 모양이다. 정부나 정권에 착하게 보이는 집단이 소통이 잘 된다고 착각하는 것도 민주화 세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다수 야당에 의한 민주화에 대한 착각은 별로 나아질 것처럼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선진국에서 특정 직역에 대한 법안을 만드는 목적은 사회의 보호(Protecting the Society)가 주된 목적이다. 보건의료인 직역은 이런 법안의 규제를 받는 대표적 집단이다. 그리고 전문직역에 관한 법은 의료법이나 간호법과 같은 모호한 단어보다는 의사법, 간호사법 등 직역으로 지칭한다. 간호사법이라는 용어 대신에 간호법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아마도 의료법과 균형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몇 개 직역은 별도의 직역별 법안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이를 의식한 듯 슬쩍 피해가는 모습이다. 선진국은 보건의료 직역에 관한 법률에서 직종에 대한 정의와 직무 범위 그리고 직무의 표(수)준, 자격과 면허의 관리를 담당하는 기구의 설립과 운영, 수준(standard) 이하의 직무에 대한 자율적 행정처분 등이 담겨 있다. 현재 복지위를 통과한 대안 간호법을 보면 아직도 국회나 행정부의 전문직 관리에 대한 초보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적으로 의료인력에 대한 법률로 주목을 받는 캐나다의 보건의료인규제(Regulated Health Professions Act 1991)에 관한 내용을 보면 법률을 제정한 시각은 분명히 사회의 보호와 안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의사를 포함해 26개 보건 의료직에 대해 각각 별도로 해당 직역의 법조항을 갖고 있다. 의사는 의사법, 간호사는 간호사법이다. 우리나라는 시대별로 사안별로 직역에 따라 법을 제정하는 것에 찬성과 반대의 혼돈스러운 모습을 보여왔다.   

현재 통과된 대안 간호법을 보면 면허와 자격에 대한 학력, 경력, 시험 등의 좋은 간호를 위한 조항과 나쁜 혹은 수준 이하의 간호를 방지하기 위한 교육지원과 행정처분이 담겨 있다. 법정 단체로써 중앙회의 역할에 부합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아직도 법으로 정한 중앙회의 역할과 필수 구조에 대한 현대적인 내용은 없다. 현재의 의료법이 허용한 전문직 자율규제가 실무적으로 무력화돼있는 제도로 이미 잘 알려진 터에 대안 간호법에 다시 또 무기력한 윤리와 행정처분에 관한 규정도 담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식되는 현대적 개념의 전문직 법정 중앙단체는 공익을 위한 단체(Regulator)이지, 조합이나 회원 보호나 권리 신장을 위한 이익단체(Trade Union)는 아니다. 율사 출신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전문직에 대한 국가적 관리에 대한 낮은 인지도가 전문직의 이익과 공익의 이원화 된 기능적 구별도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간호법의 거버넌스도 전문직 중앙회가 아닌 복지부나 대통령으로 전형적 관료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런 비판적 시각은 현재 복지위를 통과한 대안 간호법에는 간호사의 권리 보호와 처우개선, 근무환경 개선 보호, 그리고 복리후생에 대한 선언적 내용과 지원책도 담고 있어 간호사 보호와 사회보호가 혼재돼 있다. 차라리 ‘간호인력보호특별법’으로 법안 명칭을 바꿔야 할 것 같다.

현재 간호사 근무 여건이 나쁘다는 것은 이견이 없다. 시급히 더 좋은 근로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 것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고액의 급여를 지급하는 미국도 간호사 이직과 부족 현상을 막지 못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보다 근무 여건도 휠씬 좋다. 영국이나 호주도 간호사 부족을 인도와 필리핀에서 해결하고 있다. 대안 간호법으로 간호인력 지원센터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마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센터 운영과 비슷해 보인다. 법 만능주의 사고가 만들어 낸 결과로 보인다.

물론 인력지원을 위한 정부예산을 사용할 수 있다는 고무적인 현상이고 의료 공공성 강화로도 보인다. 그런데 이런 조항이 필요한 직역이 간호인력 뿐인가? 나머지 보건의료인 직역은 근무 여건이 좋은가? 의사의 급여가 다른 보건 의료인보다 높다고 해서 의사의 근무 여건도 좋은가? 전공의 처우와 교육은 또 어떤가? 우리나라의 의료접근성과 이용률이 현재와 같이 높은 실정에서 국내총생산(GDP)의 8%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보건의료인 처우개선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등도 반문해 본다.   

대안 간호법에서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조항으로 간호법이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간호와 간병의 통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선언적 규정도 있다. 이런 법률 조항보다는 간호와 간병을 위한 정책 개선이나 예산 조정의 실천적 사항이 우선이다. 아니면 법으로 ‘정부는 간호와 간병의 통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해야 한다’로 바꿔야 한다. 이런 조항은 마치 ‘대한민국 국민은 착하게 살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거나, ‘의사는 공공의료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와 같은 해석이 애매한 조항이다.    
  
현재의 대안 간호법은 아빠 찬스도 아닌 전현직 국회의원 찬스가 만들어낸 특정 직역을 위한 어설픈 법안이다. 국회의원이 보는 시각이 사회 보호가 우선돼야 하는데 특정 직역 대변자가 됐다. 자칭 민주화 세력인 정당의 작품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 민주화 발달 정도도 가늠하게 한다. 대안 간호법을 간호조무사 단체가 반대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직역에 대한 기술이나 간호사와 간무사 단체 사이의 관계 설정에 대한 조항도 없다. 간호법이 별도의 법안으로 필요하다면 간호조무법, 간병법 등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다양한 보건의료전문직은 뒤로하고 의견조회도 없이 복지위 법안소위에 이어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해 10개가 넘은 보건의료인 단체는 분개하고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여름도 매우 무더운 시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전문직역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면 선진국과 같이 사회 보호를 위한 인적관리 차원에서 제정돼야 한다. 굳이 모호한 의료법이나 간호법 보다는 보건의료 모든 직역별로 자율규제 기관의 설립과 운영을 주문하고 자격과 면허의 관리, 직역범위와 수준, 행정처분 등의 내용이 종합적으로 묶여진 진정한 전문직을 위한 법으로 정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 법안에는 직역별 전문직 공익단체의 최상위 연합체 구성과 직역 간의 갈등과 조정 등의 역할을 명시해야 한다. 대안 간호법과 같은 어설픈 법안을 만들기 전에 국회 복지위는 보건의료인 직역의 전문직 관리의 현대화에 대한 학습과 연구가 우선이다. 

결론적으로 대안 간호법을 제정하려면 왜 간호를 위한 별도의 법이 필요한지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법안은 반드시 사회 보호의 관점에서, 그리고 다양한 보건의료직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우리나라 법에서 명시한 보건의료직 모두에게 직역별이거나, 아니면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본격적인 보건의료인규제(Health Professional Regulation) 법안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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