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도구로 삼지 말라."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이 정부의 의료 개혁에 반대해 사직서를 던진 전공의를 향해 한 말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정 정책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밝히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한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과 '업무개시명령'으로 의사들의 입을 틀어막고, 의사들을 국민 생명을 저버린 '악마' 취급하며 의료계에게 현장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와 만난 일본 관서외국어대학 장부승 교수는 의료 전문가인 '의사'를 악마 취급하는 모습이 마치 과거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와 유사하다며 이로 인한 피해는 국민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 주장 반대 이유로 의사 '악마화'…보람 추구하는 의사들 '모욕감' 느낄 것
Q. 의정 갈등 자체도 문제지만 의사들을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에도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A. 사실 그 부분이 이번 사태에서 매우 우려된다. 다른 나라에서도 의사 파업은 종종 일어나는데, 그렇다고 정부가 의사들을 '국민 생명을 저버린 파렴치한'이라거나 '자기 이익만 아는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경우는 그 예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지금 전공의들이 받는 연봉을 보면 시간당 임금으로 환산했을 때 거의 최저임금 수준이다. 게다가 매주 100시간 가까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정부 공무원들도 정부 중앙 부처 사무관, 서기관으로 근무할 때 주당 100시간 이상 노동을 겪어 봤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 것이다.
정부 부처 사무관이나 서기관이 그런 가혹한 노동시간을 버텨내는 이유는 결국 그렇게 혹사 당하더라도 나중에 국장이나 장차관 자리를 노려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앞으로 국장급 이상 자리는 모두 정무직으로 임명하고 행정고시 출신은 과장급까지만 승진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정부 정책이 바뀐다면 사무관, 서기관들이 주당 100시간 노동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의대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의대 교수라고 해서 대단한 연봉을 받는 게 아니다. 나와 같은 인문사회과학 교수보다 연봉이 조금은 더 높다.
하지만 의대 교수는 사실상 방학이 없다. 따라서 시간당 임금으로 환산해 봤을 때 의대 교수는 인문사회과학 분야 교수와 큰 연봉 차이가 없을 것이다. 대학교수라는 직업은 돈을 많이 벌겠다고 하는 자리가 아니다. 명예나 보람을 추구하는 자리인데, 그들을 대상으로 자꾸 이기주의라고 몰아가는 것은 모욕감만 느끼게 할 뿐이다. 참으로 걱정이다.
윤석열 대통령 '제2의 모택동'되나?…"의사, 전문가 역할 포기해 버릴수도"
Q. 이처럼 의사를 악마화할 경우 발생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요즘 여러 온라인 매체 댓글들 보면 의사나 전공의, 의대 교수들에 대해서 원색적인 발언, 차마 입에 옮기기도 어려운 노골적인 비난 표현들이 등장한다. 이런 걸 보면 옛날 중국의 모택동 시절의 문화대혁명이라든가 대약진운동이 떠오른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도 의사는 물론 대학교수, 지식인들을 부르주아 사상에 찌들어 있는 반동분자라고 해서 두드려 패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거나 감옥에 집어 넣는 일들이 벌어졌다. 어제까지 학생이었던 제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교수들의 따귀를 때리고, 팔을 뒤로 꺾은 채 본인이 반동분자임을 자백하라고 강요하고 했던 것이 중국의 문화혁명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병원에는 의사가 사라지고 새파란 나이의 젊은 의대 학부생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공산당 당성이 충만한 젊은이들로 의료 현장을 채운 것이다. 하지만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그들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는 없었다. 의료는 공산주의에 대한 투철한 충성심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 지식과 경험에 근거해서 냉정하게 상황을 평가하고 적절한 진료행위를 해야만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대약진운동도 마찬가지다. 모택동이 1950년대에 중국의 산업생산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켜 몇 년 내로 영국을 따라잡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놨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철강 생산량의 획기적 증산을 위해서 동네마다 미니용광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숟가락, 젓가락, 문고리까지 다 집어 넣어서 쇳덩이를 만들어냈다. 멀쩡한 숟가락, 젓가락, 문고리를 쓸모없는 쇳덩이로 바꾸어 놓고는 철강 생산량 늘렸다고 위에다 보고했다. 농업 생산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생산을 철폐하고 인민공사라는 것을 만들어서 모든 생산수단의 공동소유 하에 공동생산, 공동생활을 하게 했다.
그 결과는 대참극이었다. 그런 식의 공동소유, 공동생산 체제 하에서 아무도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몇 년 못가서 농업을 포함해 산업 생산량이 급감했고, 대략 2000만 내지 3000만의 중국인이 식량 부족으로 사망했다. 모택동의 오판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제2의 모택동'이 돼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솔직히 걱정이 된다. 철강 생산량만 늘린다고 후진국 중국이 어느 날 갑자기 영국이 되지 못한다. 산업생산이라고 하는 것은 복잡한 시스템 전체가 종합적으로 발전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의료 역시 마찬가지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한국의 의료 체계가 갖고 있는 여러 모순이 지금 당장 해결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왜 그토록 의대 정원에 집착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Q. 정부의 현 태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A. 첫째는 정책에 대한 여론몰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론은 중요하다. 하지만 의료시스템의 개혁은 다수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의사 숫자가 충분하다고 보십니까"라고 여론조사를 해보면 실제 의사 숫자와 관계없이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찬성 의견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 시스템의 개혁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 그리고 그 비용을 계산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고쳐나갈 것인지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비용 구조를 명확히 한 다음 국민들에게 비용 청구서도 함께 보여주면서 "의사를 늘릴까요, 말까요"라고 물어보면 국민들의 답변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국민 다수가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한다는 이유만으로 졸속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의대 정원 문제를 포함해서 의료 시스템 전반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지를 먼저 논의해야 하고, 그에 따라 무슨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 것인지도 비교적 상세히 계산해야 한다.
그 계산에 근거한 비용 청구서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면서 토론을 해야하는데, 지금 윤석열 정부는 그 비용 청구서 문제를 애써 숨기고 있다.
정부가 앞장 서서 의사를 악마화하는 것도 큰 문제다. 앞서 말했듯 해외에서는 의사들이 파업을 했다고 해서 의사를 악마화하진 않는다. 영국과 프랑스처럼 의사들이 파업을 자주하는 나라는 물론이고, 일본과 독일의 경우를 봐도 의사를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이기주의로 매도하지 않는다.
이들 나라들에서는 원칙적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건강을 개선해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특정 전문가 집단을 악마화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오게 돼 있다. 전문가는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고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 전문가 집단 전체를 '악마화'해버리면 이들은 전문가로서의 자신의 존재 가치, 정당성 자체를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전문가들은 전문적 서비스의 공급 자체를 포기해 버릴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중국은 문화대혁명 시기 의사들을 '반동분자'로 매도하면서 결국 병원에 의사가 없어지도록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의사를 '악마화'하니까 병원에 의사들이 사라지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전문가와 지식인 집단을 악마화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의대 증원 논의 전면 백지화…전문가 포함한 새로운 협의틀 만들어야
Q. 이 문제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논의해 나가야 할까?
A. 우선 기존의 의대 정원 증원 관련 조치와 논의들부터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
둘째, 논의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단순히 의대 정원을 얼마로 할 것인지하는 매우 한정적이고 좁은 문제에만 의제를 국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의료 체계 전반을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제로 베이스에서 근본적으로 토론하자는 목표 설정을 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이런 전제에 따라 새로운 협의틀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후생노동성 산하 '의사수급분과회'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분과회에는 20명 멤버 중 14명이 의사다. 이 의사들은 주로 임상 경험이나 의료 행정 경험이 풍부한 명망가들이거나 이미 현업에서 은퇴 내지 은퇴에 가까운 분들이다.
이들은 의료 체계 개혁 문제에 대한 경험이나 식견을 충분히 갖고 있는 반면,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발짝 물러서서 국민 전체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의료 개혁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
물론 일본의 '의사수급분과회'에는 우리의 의협에 해당하는 일본의사회라든가 각종 의사 단체 대표들도 들어오고, 의대 학장도 들어온다. 같은 의사라 해도 의료계 내부에서의 위치에 따라서 여러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
그런 이해관계를 고르게 대표할 수 있도록 분과회의 구조가 정교하게 설계돼 있다. 그리고 의사 외에도 의료 문제에 대해 전문성을 갖고 있는 간호사, 사회과학자, 의료 관련 봉사 단체, 요양시설 대표 등 의사가 아니면서도 실제로 의료 시스템 관련 경험이나 식견을 보유하고 있는 분들도 포함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식의 협의체를 구성해 볼 필요가 있다.
넷쩨, 이 협의체에서 당장 몇 달 내에 결론을 내린다는 식으로 성급하게 접근해서는 절대 안 된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점진적으로 일을 추진해야 한다.
일본의 '의사수급분과회'는 당장 어떤 결론을 내리고 해산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서 협의를 거듭하고, 보고서도 내고, 또 주기적으로 보고서를 업데이트하면서 활동을 지속해 나간다. 의료 시스템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하는 기회를 가진다.
일본이나 영국의 사례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변화를 추구하되 절대 급하게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료시스템, 특히 그 중에서도 의료 인력의 양성은 매우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분야이다. 좋은 의사 한 명을 만들려면 보통 15년에서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의사들을 양성하는 과정에 또 의료 환경 자체가 계속 변화하기 마련이다. 사격에 비유하자면 과녁 자체가 계속 움직이고 있고, 사격자의 위치도 계속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기관총을 난사하듯이 물량공세만 퍼부어 가지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의료 시스템이나 의료 인력의 양성은 모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섣불리 정책을 추진했다가 10년, 20년 뒤에 그 정책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면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은 모두 국민들의 몫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다른 나라들도 다 그런 식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비용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의사 시스템이 무엇인지 논의하는 동시에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반드시 구체적인 계산을 해봐야 한다. 비용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의료 개혁은 항상 '다다익선'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좋은 의료는 절대 공짜가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가 반드시 그 비용을 부담하게 돼 있다. 그 부분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밝혀서 정확한 비용을 국민들에게 알려드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의료계에 시장경쟁 논리 도입하려는 정부…그럼 정부도 독점권 내려놓아야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우선 윤석열 정부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매우 독특한 의료 시스템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한국은 국가가 지정하는 단일 건강보험에 전 국민과 모든 의료 서비스 공급자가 강제로 가입하게 돼 있다. 의료행위에 대한 보수도 사실상 정부가 다 결정한다. 정부가 건강보험의 공급과 가격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의료 서비스의 가격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이번 의대 정원 증원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인식은 의사들을 일종의 카르텔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카르텔을 깨기 위해서 보다 많은 시장경쟁 논리를 의료계에 도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 숫자를 대폭 늘려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에 일리가 아주 없다고는 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사들에게 시장경쟁 논리를 요구한다면 정부 역시 시장경쟁의 논리를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닐까? 건강보험의 공급과 의료 수가의 결정권을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현행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은 시장경쟁의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논리를 정부 스스로에게도 적용한다면 정부 역시 건강보험 공급과 수가 결정의 독점권을 완화하고 보다 많은 시장경쟁의 논리를 수용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사실상의 무상 의료, 사회주의 의료체계를 갖고 있는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들도 우리나라처럼 단일 보험을 전일적으로 강제하지는 않는다. 일정한 사보험의 영역을 인정하고 그 영역에서는 의사와 의료 수요자들이 시장경쟁의 논리에 따라서 거래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시장경쟁의 논리를 의사들에게 요구하고 있는데, 자기 스스로는 이러한 시장경쟁의 논리를 수용할 자세가 있는지 묻고 싶다.
의료계, 인내심 갖고 국민에게 설명 노력해야…"진심은 통한다"
의사나 의료종사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다수 국민의 반대 여론에 부딪혔을 때 전문가들은 좌절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선 안 된다.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결국 전문성을 다시 강조하는 것밖에 없다. 다시 말해 국민들에게 계속해서 다시 설명을 드리는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꾸준하게, 사실이 무엇인지, 현실이 무엇인지 왜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를 인내심을 갖고 계속해서 꾸준히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설명을 하다가 벽에 부딪히면 벽에 대고 얘기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라도 이야기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이렇게 진정성을 갖고 국민들에 대한 설득 노력을 거듭하게 되면 언제가는 그 진심이 통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한때 의대 정원을 무조건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의사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의 끈질긴 설명 덕분에 지금은 상당수 언론에서도 인식이 많이 바뀌어 있는 상태다.의료 시스템의 여러 문제들이 단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의사 숫자의 급격한 증가는 자칫하면 오히려 의료 비용의 격증이라든가 의료 서비스 질 저하든 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심어졌다.
국민들도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독특성 이해하고, 전문가 목소리 귀 기울여야"
Q. 국민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국민께 우리 의료 시스템의 독특성을 이해해 달라고 당부드리고 싶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독특한 의료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 의료 시스템의 정책들을 그 맥락을 제거한 채 그냥 껍데기만 가져올 경우에 한국에서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의사 수자가 OECD 평균에 못 미치니 우리나라 의사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나라와 우리 나라간 의료 시스템의 커다란 차이를 깡그리 무시하는 주장이다.
국민들이 이런 잘못된 주장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우선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과 다른 나라의 의료 시스템 간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파악해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이미 그런 의료 체계의 국가 간 차이에 대해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 그런 분들의 설명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들 한 분 한 분이 의료 시스템에 대해서 보다 높은 이해도를 갖게 된다면 결국 우리 국민들께서 더 좋은 의료 시스템을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의료 개혁 문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과학적 태도를 견지해야만 하지만, 이 문제 역시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인 문제이다. 나라마다 의료환경이 다르고, 수요와 공급이 다르고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의료 수급과 의료 환경도 계속해서 변한다. 이에 따라 완벽하게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정확한 의대 정원 숫자를 결론 짓는다거나 누가봐도 이론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의료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문제다.
인내심을 갖고 관련 당사자들에게 충분한 의사 표현의 기회를 주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항상 열린 자세를 유지하면서 경청하려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그런 적극적이면서도 포용적인 토론 자세를 유지할 때 이 문제에 대해서 비로소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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