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늘려도 파업 안 한 일본·영국?…외국은 의사결정에서 의사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특별인터뷰] 일본 관서외국어대학 장부승 교수① "일본·영국은 의대 정원 의사결정 과정에 의료계 의견 적극 수용해"

일본 관서외국어대학 장부승 교수
 
[특별인터뷰] '가짜뉴스'와 '의사 악마화'가 판치는 한국…해외 사례에서 배울 점은?

일본 관서외국어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는 장부승 교수는 의사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지만 지난해부터 우리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우려를 표해왔다. 그리고 정부가 올해 초 2000명이라는 전 세계 유례없는 과격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내놓으며 의료계를 악마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 정부가 한 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는 의료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문제의식을 갖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장 교수는 해외 여러나라의 의대 정원 정책 결정 과정을 비교하며 앞으로 의대 정원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① 의사 늘려도 파업 안 한 일본·영국?…외국은 의사를 의사결정에서 무시하지 않았다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의사들과 구체적 논의도 없이 하루아침에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강행하고 있다. 이에 반대해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던진 젊은 의사들을 정부는 '악마'로 취급하며 면허 정지는 물론 형사처벌까지 운운하고 있다.

이는 실제로 2024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부터 한국 정부의 비상식적인 의료 개혁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해 주목을 받고 있는 전문가가 있다. 바로 일본 관서외국어대학 장부승 교수다.

의사도 아닌 그가 이토록 우리나라 의료 정책에 관심을 갖고 문제 제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은 메디게이트뉴스 본사에서 진행된 장부승 교수와의 일문일답. 



의사 수 OECD 평균보다 낮아 의사 수늘려야?…"근거 미약한 조잡한 주장"

Q. 정치외교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한국의 의료 개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A. 의사도 아니고, 주변 가족이나 친척 중에 의사도 없다. 본인의 경우 현재 일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일본 건강보험에서 담당을 해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의대 정원 논의와 아무런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 동시에 사회과학자로서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로부터는 한 발짝 떨어져서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의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국과 러시아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한국 외교부에서 15년 근무했는데, 그중 5년 반 동안 주중대사관과 주블라디보스톡총영사관에 근무했다. 그때 사회주의 의료라는 것을 접했는데, 실상을 알고보니 정말 처참했다. 얼핏 생각하기에 의료비가 공짜라고 하니까 좋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러시아에서 접한 병원은 참혹했다. 병원이 '나이롱' 환자로 미어터지고 의사들의 실력은 형편없어서 의료 사고가 빈발한다. 그런데 또 의사, 간호사는 다 공무원이다. 숫자가 많긴 한데 박봉에 시달린다. 실력이 괜찮다 싶은 의사들은 대도시로 가버리거나 아예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의사를 늘려봤자 뭐하겠나? 결국은 '무상의료가 좋은 것이 아니다', '의사가 많다고 능사가 아니다,', '어떤 의료 시스템을 갖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원래 박사논문도 비교정책학 주제로 썼기 때문에 동일한 과제에 대해서 서로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대응 양상을 보이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좋은 의료서비스의 공급이라는 과제에 대해 서로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달리 대응하고 있는지는 사실 사회과학자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이번에 국내에서 의대 정원 문제가 벌어지면서 언론이나 정부 발표를 통해 여러 얘기들이 나왔는데, 내가 아는 상식과 상당 부분이 달랐다. '이상하다,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인가' 싶어서 자료를 여기저기 찾아봤다. 역시나 한국 언론이나 정부에서 말하는 내용들이 잘못되거나 아니면 아전인수격으로 침소봉대한 것들이었다. 그러면서 '아, 이거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되겠다. 나 같은 사람이라도 나서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Q. 어떤 부분이 그토록 잘못 알려진 부분인가?

A. 제일 어이가 없는 것이 우리나라 의사 숫자가 OECD 평균보다 낮으니 의사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보통 의료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 캐나다, 영국, 벨기에,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이 다 OECD 평균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가 적다. 그러면 이들은 의사 숫자가 OECD 평균보다 낮은데 어떻게 의료 선진국 소리를 들을까? 그리고 OECD 평균보다 의사 숫자가 많은 나라들에 가면 거기는 의사 숫자 늘리자는 얘기가 없을까? 아니다. 그 나라들도 여론조사를 해보면 여전히 의사 부족하다고 하면서 의사 숫자 더 늘리자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우리는 의사 숫자 충분하다, 의사 더 필요없다'고 하는 나라는 없다.

의료서비스의 공급 자체가 의사 숫자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 숫자가 적다 해도, 진료 행위의 숫자, 진료 시간을 늘림으로써 의료 공급은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의사가 아무리 많아도 진료 행위 숫자가 적으면 의사 만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OECD 국가들 중에 의사가 가장 많은 나라들이 그리스와 포르투갈인데, 이들 나라들에서는 의사 만나기가 매우 어렵다. 

반면 OECD 국가들 중에 의사 1인당 진료 횟수가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그러니까 실제 의료 공급량은 한국이 오히려 더 높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의료의 질, 즉 퀄리티라고 하는 것도 의사 숫자랑 별 상관이 없다. 세계적으로 의사가 많은 나라들은 대개 사회주의적인 무상 의료 체계를 갖고 의사들을 공무원으로 운용하는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들에서는 의사들이 열심히 일해 봤자 보상체계가 없기 때문에 의료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OECD 평균보다 우리나라 의사 숫자가 적으니까 우리나라 의사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 매우 근거가 미약할뿐더러 아주 조잡한 주장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황당한 주장들이 판을 치고 심지어 정부 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온다.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

공무원이나 다름 없는 영국 의사, 증원 원해…일본은 의사들 의견 적극 반영해 

Q. 한국에서는 일부 언론과 정부 측에서 '의사들이 파업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라든가 '의대 정원 문제로 의사들이 이토록 반발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사실이 아니다. 작년 11월만 해도 프랑스 일반의들이 대규모 파업을 했다. 작년에 영국 전공의들도 파업을 했다. 전문의들마저도 준법투쟁이나 태업에 나섰다. 올해 들어서도 영국에서 전공의들이 역대 최장기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이 파업하는 이유는 주로 낮은 급여와 근무조건 때문이다. 영국 같은 경우에, 지난 10여년간 전공의들 급여가 동결됐다. 물가는 오르는데 급여가 동결되니 전공의들의 실질임금이 26%나 하락했다. 그래서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섰다.

의대 정원 늘린다고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나라는 한국 뿐이라는 주장 역시 어폐가 있다. 나라마다 다른 의료 시스템의 차이를 완전히 무시하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영국이나 캐나다, 독일 등 여러 유럽 국가들이나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는 의사들이 사실상 공무원이다. 근무지를 사실상 정부가 정해주고 급여도 다 정해져 있다. 공무원처럼 연차에 따라서 봉급이 조금씩 올라가고, 전문의가 됐다고 해서 특별히 급여가 팍팍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은퇴하면 연금도 나온다. 대신 퇴근 시간 '땡' 치면 집에 간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의사들이 의사를 늘리자고 주장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맨날 공무원들이 인력이 부족하다고 볼멘소리 하면서 공무원 숫자를 늘려 달라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 그렇게 해야 의사들 개개인의 업무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체제 하의 의사들은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자기들이 바라던 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이나 캐나다 의사들은 항상 의사 숫자 늘리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그 나라들의 정부이다. 의사들의 교육이나 급여, 연금을 모두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데, 재정적 부담이 크니까 의사 늘리자는 주장에 정부가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Q. 일본은 우리나라와 유사한 의료시스템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정부도 일본의 사례를 들고 있는데 일본 상황은 어떠한가?

A. 실제로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행위별 수가제가 있고, 의사가 공무원이 아니라 스스로 창업하고, 망해도 스스로 책임지는 자영업자 같은 역할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설사 의대 정원을 늘린다 해도 의사들이 반발이 약하다. 왜냐하면 의대 정원을 결정하는 정책결정과정에 의사들을 충분히 참여시켜 주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경우에 의대 정원 문제는 후생노동성 산하 '의료종사자의 수급에 관한 검토회' 밑에 '의사수급분과회'가 있는데, 거기서 논의가 이뤄진다. 여기서 여러 차례에 걸쳐 시간을 두고 논의를 하고, 그 결정이 후생노동성을 통해서 내각에 반영되고 내각의 결정을 통해 의대 정원이 확정이 된다. 의대 정원 관련해서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공간이 바로 이 '의사수급분과회'인 것이다.

그런데, 이 '의사수급분과회' 멤버가 현재 20명이다. 제가 그들의 명단을 입수해서 한 명 한 명 다 경력을 확인해 봤다. 정확히 14명이 의사이다. 의대 학장이거나 병원장, 의사 단체 부회장, 상임이사 등 여러 유형의 의사들이 들어가 있다. 주로 임상 경험이나 의료 행정 경험이 풍부한 명망가 중심으로 구성이 돼 있다. 나머지 6명은 사회과학자이거나 요양시설, 의료 관련 봉사 단체 대표 같은 분들이다.

이 '의사수급분과회'에서 정기적으로 심도 깊은 토의가 이뤄진다. 중간보고서도 계속 내면서 조금씩 점진적으로 의대 정원을 조정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의대 정원 문제의 결정 과정에 이미 의사들 내지 의사 단체들의 의견이 처음부터 충분히 반영이 되기 때문에 일본의 의사들이 의대 정원 문제로 집단행동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의사들이 반발할 이유가 없다. 이미 정책에 자기들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데 왜 반발하겠나?

의대 정원 결정 과정에서 의료계 목소리 수용…의료 전문가 의견 존중해야

Q. 의대 정원 정책을 일본처럼 의사단체가 함께 참여해 결정하는 나라가 또 있나?

A. 영국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은 작년에 의대 정원을 2031년까지 5000명 늘리겠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이 주장이 처음 나왔던 것이 2018년이다. 영국 왕립의사회(Royal College of Physicians)에서 입장 보고서를 내면서 의대 정원 늘리자는 주장이 나왔다. 2021년에는 영국 의대들의 협의체인 의대협의회(Medical Schools Council)에서 역시 입장 보고서를 내고, 의대 정원 증원 규모, 비용, 증원의 방식, 연도별 증원 숫자까지도 다 포함시켜서 구체적인 주장들을 내놨다.

이들 의사들의 의대 정원 증원 요구에 대해 영국 정부는 난색을 표했다. 영국 정부는 처음에는 의대 증원에 반대였다. 영국은 의사가 공무원이다. 한 번 뽑으면 정부 입장에서는 그 의사가 은퇴할 때까지는 물론이고 은퇴후 연금까지 다 책임져야 된다. 그러니 재정 부담을 고려하면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영국 의사들은 끈질기게 설득을 거듭해서 결국 2022년에 영국 하원 보건복지위가 의대 정원 증원 입장을 내놨고, 야당인 노동당도 찬성하게 됐다. 이렇게 되니 영국 집권 여당 보수당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결국 작년에 영국 정부와 영국 국민건강공단(NHS: National Health Service) 장기인력 확충 계획(Long-term Workforce Plan)을 내놓게 된다. 거기에 보면 의대 정원을 늘리자는 내용도 다 들어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영국 국민건강공단이 발표한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이 당초 영국 왕립의사회나 의대협의회가 내놨던 계획과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영국 의사들이 주장하던 내용을 상당 부분 수용해줬다는 말이다. 

Q. 영국이나 일본처럼 그럼 우리나라도 의대 정원이라든가 의료 정책 결정 과정에 의사들을 깊숙이 관여시켜 주어야 한다는 주장인가?

A. 그렇다. 윤석열 정부는 의대 정원 문제는 정부가 결정할 문제라고 하는데, 그건 사실 말이 안되는 것이다. 일본이나 영국도 최종 결정은 정부가 다 한다. 그게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결정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이미 사전에 의사들, 병원들, 의대들, 의료 전문가들의 의견들이 다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장치들을 만들어놨다.

그러니까 '의대 정원은 정부가 결정할 일이니 의사들이나 의대 교수들은 관여하지 말라든가, 의대 정원 문제로 의사들이 이렇게 반발하는 나라가 전세계에 없다'는 주장은 사실 매우 잘못된 주장인 것이다. 다른 나라의 의료체계나 정책결정 구조를 껍데기만 보니까 이렇게 이상한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진정 제대로 된 교훈을 얻으려면 다른 나라의 정책 결정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우선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영국이나 일본의 의대 정원 결정 과정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의대 정원은 정부가 결정할 문제'라든가, '의대 정원 문제로 의사들이 반발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라는 식의 얄팍한 주장은 절대 할 수 없다.

의사 수 늘리는 영국, 독일…'해외 유출'과 '장롱면허' 문제로 증원 결정

Q. 한국 정부는 영국과 독일도 최근 의대 정원을 크게 늘렸다면서 의대 정원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거라는 식으로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영국이 2031년까지 의대 정원을 현행 9500명에서 1만5000명으로 늘리고, 독일 역시 의대 정원을 5000명 이상 증원할 계획을 내놓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이 왜 이런 계획을 내놓게 된 것인지 그 배경을 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 나라들은 심각한 의사 인력 유출과 '장롱면허' 문제를 겪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 2021년 5월에서 이듬해 5월 사이 약 1년간 무려 5000명 가까운 의사들이 해외로 유출됐다. 이게 어느 한 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영국은 만성적인 의사 해외 유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은 주로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미국 등으로 이주하고 있다. 호주는 전문의 기준으로 영국보다 대략 2배 정도 연봉을 준다. 게다가 이주에 따르는 항공료나 이사 비용까지 대주는 경우가 많다. 그에 추가해서 정착 지원금까지 준다. 지금 영국에서 전문의들 연봉이 대략 우리 돈으로 2억원쯤 한다. 호주에서는 전문의들 평균 연봉이 우리 돈으로 대략 4억원쯤 한다. 영국 의사들이 대량으로 해외유출되고 있는 데는 이렇게 영국과 다른 나라들간의 심각한 의사 연봉 격차가 있다.

의사 해외 유출로 인한 의료 공급 부족 문제를 영국은 지금껏 해외에서 의사들을 유입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2019년 영국의 신규 등록 의사들이 대략 1만7000명 정도 된다. 이들 중 영국에서 의대를 나오고 면허를 취득한 의사는 대략 7500명이다. 그 나머지 9500명 정도는 해외에서 면허를 취득한 의사들이다.

영국의 의사들이 의대 정원을 늘리자고 주장하면서 목표 정원을 1만5000명으로 제시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매년 신규 등록 의사가 1만7000명 정도 된다는 것은 의사 수요가 그 정도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국내 정원이 묶여 있어서는 그 수요를 대응할 수가 없으니 국내 의대 정원을 일정 정도 늘리고 그 나머지 수요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해외 의대 출신 의사들로 채우자는 주장인 것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심각한 '장롱면허'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어렵게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 의사를 만들어 놨는데, 면허를 취득하고 나서 실제로는 의사로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1990년에 독일의 의사 숫자가 면허 기준으로 29만명이었는데, 이 중 '장롱면허'가 대략 5만명 정도였다. 대략 5분의 1이 조금 안 되는 정도였다. 독일에서 의사 숫자는 꾸준히 늘어서 2022년에는 56만까지 늘어난다. 그런데 이 중에 '장롱면허'가 무려 14만 가까이 된다. 면허를 가진 의사들의 거의 4분의 1 정도가 의사를 안 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대학교육이 무료다. 의사 양성 역시 다 정부 재정으로 지원해 준다. 그렇게 해서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의사를 만들어 놨더니 실제로는 의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 독일은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의사들 경우에 특별히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다. 근로시간도 일반 근로자 기준으로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서 환자를 많이 보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전문의가 된다고 해도 일반의에 비해서 연봉이 크게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의사 되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인데, 뭔가 특별히 의사가 돼서 좋은 점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꾸 면허를 장롱에 넣어 두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의사는 계속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독일이 의대 증원에 나서는 배경이다. 게다가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 독일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자는 주장은 연방정부의 계획이다. 실제로 의대는 각 주별로 존재하고, 이들의 재정은 각 주정부가 지원해 준다. 의사 양성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독일 연방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이 계획대로 실현될지 자체가 미지수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향후 10년내로 현재 9500명 수준인 의대 정원을 1만5000명 수준까지 늘리겠다고 계획은 내놨지만, 의대 신설과 부속병원 확보, 의료 교수인력 확보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과연 향후 10년동안 의대 정원 증원이 실제로 이루어질 지는 의문이다. 막대한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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