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비 급증 막아야" 공감대 이뤘지만 의대증원 문제는 '평행선'

정부-서울의대 비대위, 의정 갈등 핵심 의대증원 문제서 확연한 입장차 확인…보건의료발전계획 수립 공감대

서울의대 비대위는 10일 서울의대 융합관에서 대통령실 장상윤 사회수서 비서관, 복지부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과 토론을 벌였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부와 의료계의 의정 갈등이 8개월째 지속되는 가운데 10일 대통령실 및 정부 관계자와 서울의대 교수들이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의∙정이 강 대 강 대치 속에서 오랜만에 대화 테이블에 앉는다는 점에서 주목받았고 실제 일부 의견 일치가 이뤄진 부분도 있었지만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의대증원 문제에서는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날 서울의대 비대위 주최로 서울의대 융합관 박희택 홀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정부 측에서 대통령실 장상윤 사회수석 비서관, 보건복지부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 서울의대 비대위에선 강희경 비대위원장, 하은진 비대위원이 참석했다.

"1차의료 강화∙건강 수명 높여야" vs "실손보험∙비급여 관리 강화 필요"
 
양측은 현재 의료비 급증으로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대를 이뤘다. 현재 GDP 대비 10% 수준인 의료비가 2030년 16%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의료비 증가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해법을 놓고선 정부와 서울의대 비대위가 방점을 찍은 곳이 달랐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의료비 증가 속도를 완화하기 위해 국민들의 건강 수명을 늘려야 한다며 1차 의료의 강화를 주장했다. 1차 의료기관이 지역민들의 건강을 평소에 관리하면서, 과도한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막아주는 게이트키퍼로서 역할도 수행하게 하면 의료비 폭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비대위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차 의료를 강화해달라며 의사와 여타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자신의 건강을 관리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실제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에서 연구용역을 했고 환자중심 1차의료 시범사업을 잘 진행하면 의료비가 억제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고 했다.
 
하은진 비대위원은 1차 의료 강화가 성공하기 위해선 진찰료 인상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환자들은 가까운 곳에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주치의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1차의료의 맹점은 진찰료가 매우 낮아 환자를 오랫동안 잘 진찰해 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라며 “그래서 치료적이지만 비급여 진료를 더 열심히 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면 장상윤 수석은 실손보험과 비급여 관리 강화를 강조했다. 이미 의료비 지출의 50% 이상을 실손보험이나 개인들이 부담하고 있는 만큼 이를 억제하지 않고서는 가파른 의료비 증가세를 막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장 수석은 “최근 데이터상 우리나라 의료비 지출 210조원 중 건강보험이 100조원 정도를 커버하고 나머지는 비급여나 개인 지출이다. 비급여나 비필수의료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쏟고 있는 것”이라며 “그래서 의료개혁 과제에 실손보험 개혁과 비급여 관리 강화가 포함돼 있다”고 했다.
 
정경실 단장은 “실손에 대해서 앞으로는 비용 부담 체계를 합리적 의료이용에 맞게 하고, 과잉되는 부분과 관련해서 본인부담과 별도로 병행진료하는 데 대해 급여를 제한하자는 등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실손보험에 대해선 금융위원회도 문제 인식을 같이하고 있고, 금융개혁회의라는 걸 만들어서 연말에 개혁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고 했다.
 
정부와 의료계는 의대증원 문제에선 극명한 의견 차이를 보였다.

정부, 의대증원 2000명은 최소한의 숫자

양측은 정부가 기피과 문제의 해결 방안 중 하나로 내놓은 의대증원에 대해선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정부 측은 분석 결과 당초 4000명 이상의 증원이 필요했었다며 의대증원 2000명은 최소한의 숫자라고 주장했다.
 
장상윤 수석은 “일본이 우리보다 인구가 2배 정도 되는데 일본의 의대정원은 9384명, 우리는 증원 전에 3058명으로 거의 3배 정도”라며 “물론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차이는 미세할 수 있지만 최근에 나온 데이터를 보면 우리나라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부동의 꼴찌”라고 했다.
 
이어 “응급의학과 전문의라든지 중증환자 발생 시 배후진료를 담당할 필수의료 전문의급 인력이 지역으로 가면 더 부족하고 수도권에도 많이 부족하다.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의대증원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정경실 단장은 의사 수가 늘면 의료비가 증가할 것이란 우려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 단장은 “옛날 연구에서는 의사 수가 늘 때 의료비가 는다는 게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최근 경향을 보면 의사 수 증가와 의료비 증가의 연관성은 없다는 연구가 대부분인 것으로 안다”며 “대(大)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도 그 영향을 찾을 수 없다고 한 바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서울의대 비대위, 소송∙수가∙일자리가 문제
 
이 같은 정부 측 주장에 서울의대 비대위는 1차 의료 강화, 소송 리스크 해소와 수가 인상, 필수과 일자리 확충 등이 이뤄지면 지금과 같은 증원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강희경 위원장은 “1차의료를 강화하면 환자들이 가까운 곳에서 진료를 받을 테니 지역의료도 살아날 것”이라며 “그럴 때도 과연 증원이 필요할지 다시 생각해달라”고 했다.

이어 “응급실에 응급의학과 의사가 없어서 개혁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많다. 다만 그분들이 응급실 진료를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라며 “소송과 수가, 배후 진료 문제를 해결해 주면 된다”고 했다.
 
하은진 비대위원은 소아청소년과의 예를 들며 수가 외 별도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필수과의 경우 수련을 마친 후 일자리 부족도 기피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소아청소년과는 어린이 인구 자체가 줄고 있기 때문에 수가를 올려주는 것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며 “수가와 볼륨(진료량)이 합쳐져야 하는데, 볼륨이 줄더라도 나라에서 반드시 유지돼야 하는 진료영역이라 생각하면 별도의 투자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이번에 전공의 월급만 올렸더라. 월급이 너무 낮았던 만큼 인상하는 게 맞지만 전문의 고용해 더 신경 써 달라”며 “전공의들도 결국 수련이 끝나고 나면 전문의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회 내내 팽팽하게 맞섰던 양측은 막판에 보건의료발전계획 수립 필요성 부분에서도 의견 일치를 이뤘다. 정부는 지난 2000년 제정된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하지만 지금껏 한 번도 마련한 적이 없다.
 
장상윤 수석은 강희경 위원장이 토론회 초반 발제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지적하자 마무리 발언에서 “뼈아픈 지적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고 같이 수립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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