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리병, 국내 의료진·환자 인식 부족…치료 가능한 유전질환으로 조기진단이 중요"

파브리연구회-알베르토 오티즈 박사, 유럽 파브리병 치료 가이드라인 공유

▲왼쪽부터 파브리연구회 권영주 부회장, 양철우 회장과 알베르토 오티즈 박사

[메디게이트뉴스 권미란 기자] 희귀유전질환인 파브리병은 다양한 종류의 유전 변이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데 유전 변이의 종류에 따라 알파-갈락토시다제A(α-galactosidase A, α-Gal A) 결핍에 의해 발생한다. 또한 파브리병은 X염색체 연관 유전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X염색체를 하나만 가지고 있는 남성의 경우 유전 변이가 있을 경우 이를 보완할 수 없다. 반면, 여성의 경우 유전 변이가 있다고 해도 다른 하나의 X 염색체로 인해 특정 단백질이 완전히 생성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파브리병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지만 국내 인식 부족해 제대로 치료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신장학회 산하 파브리연구회는 파브리병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적정 치료시기와 치료 대상 등을 판단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진료지침 마련에 나섰다.

최근 유럽에서 파브리병 치료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스페인 마드리드 자치대학교의 알베르토 오티즈 박사(Alberto Ortiz), 대한신장학회 산하 파브리연구회 양철우 회장(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과 권영주 부회장(고려대 구로병원 신장내과)을 만나 파브리병과 가이드라인의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 국내 파브리병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양철우 교수 "파브리병은 국내에서 현재까지 200명 가량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희귀유전질환이다. 각 병과의 의사 개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파브리병을 진단하고 환자를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다양한 접근을 바탕으로 진단과 치료시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을 느껴 파브리연구회를 설립했다. 가이드라인을 보유한 유럽, 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현재 치료지침(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상황이다. 희귀질환 환자의 진단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느껴 첫 걸음을 시작하게 됐다. 특히 유럽의 파브리병 가이드라인을 만든 알베르토 오티즈 교수가 직접 내한해 유럽 가이드라인 개정 경험을 공유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유럽과 우리나라의 진단 과 치료실정을 비교하며 가장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도출해 낼 것을 기대하고 있다."

권영주 교수 "수많은 유전질환 중에서도 파브리병은 치료가 가능하다.파브리연구회를 결성하게 된 주요한 이유는 파브리병의 적정 치료시기, 치료 대상 등 신장내과 내부에서 파브리병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실질적인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 현재 파브리연구회에 신장내과 외 다른 학과의 참여가 있나.

권영주 교수 "신장내과 의료진만 20명 정도 포진해있다. 이에 파브리병에 대한 전체 지침이라기 보다 파브리 신장병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질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관심이 늘어나면 파브리병 전체 치료 및 진단 가이드라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보통 신장내과에서 환자들이 발견되나.

권영주 교수 "소아유전, 신장내과, 혹은 심장내과에서 많이 진단된다."

양철우 교수 "최근 신장내과에서 많이 진단되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씩 국가 차원에서 소변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군대를 가거나 입사할 때, 보험에 가입할 때 거의 소변 검사를 진행한다. 이같이 소변 검사가 일상화되면서 단백뇨로 신장내과를 찾는 젊은층, 중년층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 의사라도 파브리병에 대한 증상과 가족력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쉽게 진단할 수 없는 병이다. 아직 진단되지 않은 환자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파브리병이 의심되는 경우 적극적으로 검사를 권하고 환자를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 파브리병은 몇 촌까지 영향을 미치나.

권영주 교수 "모계 쪽으로 유전되었을 경우 엄마 형제에서 모두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양철우 교수 "X염색체 변이로 발생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X 염색체를 공유하는 가족은 모두 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오티즈 교수 "윗세대에서 발견될수록 더 먼 친척에서도 발견될 확률이 높다."

- 현재 우리나라는 조기 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조기 치료 시기는 언제부터인가.

권영주 교수 "보통 국내 신장내과에서는 단백뇨가 500mg이 넘는 경우에 조직검사를 진행한다. 경우에 따라 1000mg 이상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정상수치인 150mg와 비교시 다소 높은 수치로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조직 검사를 고려하고 있다. 단백뇨가 보이기 전에는 미세알부민뇨, 그 전에는 족세포가 소변에 나타나는 것을 감안할 때 ERT를 통한 조기 치료를 위해 조직검사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양철우 교수 "증상이 확인됐을 때 바로 파브리병을 진단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바로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량의 단백뇨 확인으로 만성 신부전으로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 보험 체계상 초기 확진 환자에게 보험을 적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소량의 단백뇨를 통해 파브리병을 확진하더라도 보험 적용이 어려워 치료를 미루는 환자도 있다."

- 실제로 파브리병 환자를 발견한 사례를 소개해달라.

권영주 교수 "대개 환자가 신장내과를 방문하는 이유는 단백뇨 때문이다. 실제 내 환자도 단백뇨로 신장내과에 내원했다. 관련 가족력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파브리병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신장 조직검사를 통해 확진할 수 있었다. 이후 환자 가족의 선별검사를 진행했는데 모계로부터의 유전을 의심할 수 있었다. 투석을 통해 질환을 확진한 환자도 있다. 이미 4년전부터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으나 31세에 투석을 시작해서야 파브리병으로 진단했다. 해당 환자의 경우 이미 여러 단계를 거쳐 치료시 보험을 적용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양철우 교수 "직접 확인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발견된 파브리병 형제 환자 사례가 있다. 형이 말기 신부전으로 동생의 신장을 이식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동생의 신장에서 단백뇨가 확인돼 조직검사 결과 증상이 경미한 파브리병으로 확진됐다. 형 또한 전자 현미경 소견에서 파브리병이 확진됐다. 파브리병의 경우 희귀질환이지만 치료제가 있다. 검사 결과 진단되더라도 치료를 고려할 수 있고 유전되지 않은 경우도 검사 결과를 통해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조기진단이 중요하다."

오티즈 교수 "‘구글 케이스’로 불리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남자아이가 발열 및 통증, 무한증, 혈관각화종 등으로 내원했으나 진단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이 아이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스스로를 파브리병을 의심했고, 의료진에게 검사를 요청해 파브리병을 확진받았다."

양철우 교수 "해당 케이스 등을 고려할 때 희귀질환 진단에 AI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고 할지라도 경험이 없는 경우 희귀질환은 놓치기 쉽다."

- 유럽의 파브리병 치료 가이드라인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돼 있나.

오티즈 교수 "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주로 효소대체요법(ERT)을 다루고 있다. 신장, 심장 등 증상이 발현되는 장기를 치료하는 보조요법(adjuvant therapy)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파브리병과 이로 인해 영향을 받고 있는 장기(organ)를 모니터링하며 평가하는 방법도 다룬다. 

이를 바탕으로 어느 시기에 ERT를 시작할 지 결정하고 치료의 방향을 정한다. 파브리병은 태아일 때부터 시작되는 진행성 질환으로 일정 시기를 지나면 주요 장기에 비가역적인 손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조기 진단과 조기 ERT 치료를 강조하고 있다"

- 새로 발표한 유럽 파브리병 치료 가이드라인에는 어떤 내용들이 반영됐나.

오티즈 교수 "큰 차이라고 한다면 파브리병에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파브리병에는 전형적 유형(classical type)과 비교적 늦은 나이에 증상이 나타나는(late onset), 즉 다른 말로 비 전형적 유형(non-classical type)이 있다. 어느 유형이냐에 따라 치료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유형의 남성 환자는 어릴 때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바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증상이 없을 때부터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이 진행되면 추후 장기에 비가역적 손상을 초래하고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전형적 유형의 경우 조기 진단과 치료가 매우 강조된다. 비전형적 유형의 환자나 여성 환자의 경우 어떤 증상이 발현되느냐에 따라 치료의 기준이 달라진다. 

또한 치료 시작을 권고하는 시점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단백뇨가 보고된 시점이 치료의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단백뇨 이전 증상인 미세알부민뇨가 나타나는 시기부터 치료를 권장한다.

아울러 ERT에 있어 용량의 중요성과와 질환의 통합적 치료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현재 가이드라인은 주 치료인 ERT 외에도 각 장기에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에 필요한 보조 요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하나의 치료법이 아닌 주요 장기의 증상에 대한 통합적 치료를 제시하고 있다."

- 국내 파브리병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무엇인가.

권영주 교수 "조기 치료다. 보통 단백뇨 수치를 바탕으로 진단과 치료가 이뤄진다. 단백뇨 전에는 미세알부민뇨, 그 전에는 족세포가 소변에 보이는 경우가 있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단백뇨가 300mg 이상일 때 급여 적용이 가능한 실정이다.

단백뇨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미세알부민뇨를 확인해야 하지만 미세알부민뇨가 확인되는 시기의 환자는 치료나 검사에 급여 적용이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딥스틱(소변검사) 검사를 통해 단백뇨가 확인되지 않으면 미세알부민뇨를 확인한다. 그러나 검사비가 비싸기 때문에 보통 단독으로 확인하기 보다 당뇨와 같은 다른 질환이 있을 때 검사한다. 보통 대학병원 규모의 신장내과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단백뇨가 확인돼 국내 환자는 증상 확인이 늦어질 수 밖에 없다.

치료의 목적은 질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다. 투석이나 신장 이식으로 질환이 진행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파브리병으로 인한 비가역적 장기 손상이 나타나기 전에 조기에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조기 치료가 활발히 이행된다면 질환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할 것으로 생각한다."

양철우 교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치료 지침을 ‘합리적 근거’로 제시해 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파브리병 환자가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만큼 파브리병은 이제는 소외시킬 수 없는 중요한 질환이다. 이에 대한 정확한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유럽 주요국가의 가이드라인을 공유하는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에 적합한 치료 방침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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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란 기자 ([email protected])제약 전문 기자.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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