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국회의원이 많은 위원회에 포진해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 사용법 칼럼]②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의사 국회의원이 많은 위원회에 포진해 있어야 한다."
 
오늘 22대 국회의원이 선출된다. 우리가 아무리 정치인을 혐오해도 어차피 앞으로 4년간 대한민국은 이들 300명이 좌지우지할 것이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국회의원의 자질이 대를 거듭할수록 떨어진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범죄경력이 거의 확실한 사람들도 당선권에 여러 명 보이면서 이들이 국회를 도피처로, 방탄으로 악용한다는 의혹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흘러갈 것이고, 이들은 배지를 달 것이고, 많은 언론들은 이들의 비리를 캐고 떠드느라 정작 중요한 국사는 뒷전으로 밀릴 것이다.

이 와중에 지금 대한민국 의료를 순식간에 붕괴시키는 '의료농단 사태'의 끝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보는 곳은 22대 국회 뿐인 것 같다. 이번에 의사가 몇 명 당선될지 모르지만 아마도 국회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의사들이 등원할 것 같다. 그래서 꼭 부탁하고 싶다. 

보건복지위원회에만 갈 것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상임위원회에 의사가 한 명 씩 있으면 좋겠다. 의사 국회의원은 희귀한 반면 법조인들은 오랫동안 많은 수가 국회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국회개혁, 정치개혁의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 
 
국회에는 17개의 상임위원회와 2개의 특별위원회(윤리, 예결)가 있는데 나는 임기 8년 동안 7개의 위원회를 경험했다. 그 결론은 가능한 모든 위원회에 의사가 한 명씩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위원회 
의사들이 당연히 가야하는 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병원, 시립/도립병원, 소방병원, 지방의료원, 보건소,  보건지소, 공보의(지방자치단체), 진료현장의 폭행 및 안전 문제 등

▲교육위원회
의대정원, 의대신설, 한의대 문제, 국립대병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각종 R&D, 의과학연구, 원자력병원, 한일병원

▲정무위원회
현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실손보험을 다루는, 매우 중요한 위원회인데 의사들의 입김이 거의 먹히지 않는 위원회

▲국토위원회
자동차보험 진료수가는 국토부장관이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분쟁심의회의를 거쳐서 결정된다. 자동차보험에서 한방진료비 급증이 심각한데 이를 다루는 중요한 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KOICA 및 각종 의료 ODA 사업, 의료관광, 해외의료수출/봉사, 북한의료지원

▲국방위원회 
군의관, 군의료제도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료관광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의료기기, 규제, 허가, 수,출입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농어촌 파견 공보의 문제, 식품 문제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의료, 산재병원, 산재관련, 노조(교수, 전공의, 보건의료), 의료폐기물 관리(수은혈압계 폐기 등)

▲여성가족위원회
여성/가정/아동폭력, 학교 밖 청소년, 미혼모

▲기획재정위원회
국가의 모든 재정

▲법제사법위원회
모든 법안의 최종심의

▲예산결산위원회
모든 예산과 결산심의

그중 ▲윤리특별위원회는 국회위원회 중 가장 '유명무실한'위원회이다. 

국회의원이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회의를 소집하면 대부분의 경우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이 불참하기 때문에 회의가 열리지 못한다. 흔히 국회의원이 어떤 잘못이나 비리가 나왔을 때 다른 당 소속 의원들이 윤리위원회에 회부하면서 엄포를 놓지만 징계를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내가 의욕적으로 자원해서 윤리위원회를 19대, 20대 국회에서 8년간 했지만 회의가 열린 적은 열번에도 못 미친 것 같다. 시간에 맞춰 회의에 가면 (상대방 당 의원이 일부러 불참하기 때문에) 정족수 미달로 번번이 회의가 무산되곤 했다. 실망이 컷던 위원회였다. 그래도 위원장은 꼬박꼬박 위원장 특별활동비를 챙겨 갔을 것이다.  

그 외 ▲정보위원회와 ▲운영위원회는 의사, 의료와 별 상관이 없다.

나는 이중 복지위, 문체위, 교육위, 과학위, 행안위, 여가위, 윤리위, 운영위를 경험했다. 의료관련 중요한 아젠다들이 의사들이 모르거나 관심을 가질 겨를도 없는 사이 복지위 이외 다른 위원회에서 결정되는 것을 보면서 모든 위원회에 의사가 한 명씩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경험한 예를 하나 들어본다.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사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1년간 업무도 생소한 행정안전위원회를 1년 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아주 유익한 경험이었다. 많이 배웠고 게다가 억울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돼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한번은 해외출장에서 돌아와서 행안위 회의에 참석했는데, 경찰병원이 말도 안 되는 일로 고발당해 3개월 영업정지명령을 받는 것을 목격하고 이를 뒤집은 사건이다.

(모 국회의원이 경찰병원이 환자에게 생리식염수 대신 증류수를 주사헤 환자가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경찰병원이 주사용으로 쓰이는 증류수를 식염수 대신 사용한 것은 사실이나, 1인당 13ml의 소량만 투여해 건강상 악영향은 미치지 않았다. 결국 경찰병원은 의료사고 의혹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의료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자신의 전문분야도 아닌 국회의원 한 명의 터무니없는 주장 때문에 국립경찰병원이 3개월 영업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그때 해외 출장이 좀더 길어져서 그날 회의에 내가 없었다면 이런 억울한 징계가 그대로 집행됐을 것이고 그에 따라 수많은 환자들이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의사들과 병원장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생각하면 내가 당시 행안위에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아가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국회 위원회별로 얼마나 더 자주 벌어지고 있을지, 사실관계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무지한 국회의원 한사람의 주장이 이런 식으로 마구 집행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큰 우려가 남는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위원회에 의사 출신 국회의원이 들어가 어떤 악법이 통과되는지, 어떤 국회의원이 허무맹랑한 주장을 펼치는지 눈을 똑 바로 뜨고 지켜보고 막아야 할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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