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학, 의사가 나선다

[딴짓 번외]테라젠 김경철 유전체사업 본부장

미래의학을 준비하는 의사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유전체학(genomics)은 이제 더 이상 분자생물학 전공자들만의 관심 분야가 아니다. 맞춤의학, 정밀의학이 대두되며 의학에서도 유전체학에 대한 필요성이 급격히 늘었다. 관련 연구가 늘고 치료제 개발도 활발해지며 인공지능 못지 않게 이를 알고 싶어하는 의사도 많이 늘었다.
 
그래서 메디게이트뉴스는 최근 ‘의사들도 알기 쉬운 유전체학 특강’이란 칼럼 연재를 시작했는데, 그 칼럼을 기고하는 이가 바로 이번 ‘딴짓하는 의사들’의 주인공이다. 물론, 그는 ‘딴짓’만이 아닌 환자 진료도 겸하고 있어 ‘딴짓 번외’라는 타이틀이 붙긴 했다.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유전체사업부 김경철 본부장은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를 거친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같은 대학원에서 보건대 석사과정, 유전체학 박사(노화과학협동과정 이학박사, PhD)를 취득했다.
 
김경철 본부장이 어떻게 유전체학을 전공하게 됐고, 지금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그가 지난 3월부터 근무를 시작한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이하 테라젠)를 찾았다.
 
사진: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김경철 유전체사업 본부장 ©메디게이트뉴스
  
유전체학을 전공한 의사가 유전체사업을 이끈다
 
테라젠은 유전체(genome) 분석 전문기업으로 잘 알려진 국내 기업 중 하나다. 리서치 시장에서 게놈 연구를 하는 동시에 커머셜 분야에서 활용하는 상품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국내 회사와는 차별화했다. 진단은 결국 치료가 함께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일본과의 합작 회사를 통해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형 면역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
 
테라젠에는 본인을 포함해 의사 4명이 근무하고 있다. 유전체 분야는 시퀀싱을 한 데이터를 가지고 시장을 경험한 사람들과 유전체적으로 보다 친화적인 의사가 융합해야 의미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며 실제 제품 개발 책임도 맡고 있다.
 
테라젠에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유전자 정보를 보관·관리하는 서비스 구축에 매달렸다. 그 결과,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진뱅킹’을 출시했다. 데이터를 매개로 유전체 시장과 맞물려 보다 개인화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신규사업의 일환이다. 현재 가능한 모든 수의 유전자 검사를 한 번에 시행해서 데이터베이스화 해서, 지금은 국가에서 허가하는 데이터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뱅킹으로만 저장해뒀다가 나중에 새로운 마커가 발견되고 규제가 개선되는 것에 맞춰 보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유전체 정보와 질병정보를 연계하기 위한 데이터 비즈니스 기반도 다지고 있다. 지속 가능한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방향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최근 IT 전문가들을 영입해 인공지능 기술 개발도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의료는 소비자(환자)의 자기주도결정권이 커지면서 환자를 위한 왓슨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반의 건강비서(health concierge)를 만드는 꿈도 갖고 있다.
 
비즈니스에 발을 들여 놓으며, 이전에 근무하던 차의대 ‘차움’에서 유전체 처방을 하며 의사로서 가졌던 서비스에 대한 니즈를 제대로 충족시켜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서, 질병예측에 사용되는 마커(RS No.)를 의료진에게도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테라젠에서 제공하는 유전체 분석 서비스 ‘헬로진’의 3번째 버전에서는 유전정보와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것까지 고려한 질병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 마커까지 공개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더라도 결국은 의사가 사용하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의사는 새로운 걸 사용하려면 일단 확신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의사가 먼저 알아야 한다. 유전체 검사는 의사가 많이 알수록 비용을 낸 환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분야다. 그래서 이곳에서 많이 공들이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교육이다. 지금까지 시행한 교육만해도 학회와 병원 등을 대상으로 서른 번이 넘는다.
 
사진: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실험실(출처: 테라젠 제공)
 
유전체학을 전공하기 까지
 
특이한 이력은 사실 전공의를 마치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자원해 2000년부터 3년 3개월 간 파푸아뉴기니에서 공보의로 근무하며 시작됐다. 이 때의 선택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으로 꼽는다. 이를 계기로 소심한 캐릭터에서 벗어나 다음 진로를 결정하는데 담대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교사의 꿈을 다른 방법으로 풀어낸 느낌이었다.
 
유전체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4년 뉴스위크지 1월호의 ‘유전자와 식이(Gene & Diet)’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침을 뱉도록 해 유전자를 검사한 후 본인의 유전자 특성에 맞는 음식을 추천하는 이야기를 접하면서부터다.
 
당시 의료계에서는 근거중심(evidence data) 의료가 화두였고,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가 막 소개되던 시절이었는데, 결국 200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터프츠 항노화연구소(HNRCA)에서 2년간 유전체학(genomics) 연구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유전체학과 더불어 환경에 의해 유전 정보가 변경될 수 있다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진료에 복귀한 뒤에도 바이오 관련 회사에서 무보수로 1주일에 한 번씩 연구하면서 연구와 비즈니스 측면에서 컨설팅을 3년 반 정도 하고, 한 제약업체가 유전체 신사업부를 조직하는 것도 자문하다 보니, 노하우가 쌓이고 결국 지금에 이르렀다.
 
 
의사가 실제 유전체 사업을 이끌어보니
 
유전체 사업을 직접 이끌게 되면서, 본래 알고 있던 유전체학이나 임상 지식 말고도 조직 관리를 위해 인사와 재정 분야의 지식도 쌓아야 했다. 또, 회사의 기존 문화들이 새로운 의사 출신이 합류했을 때는 긴장이 있어, 이 부분도 간과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의사로서의 장점은, 실제 의료기기를 개발해 적용할 곳이 의료기관이라 교수와 박사(PhD)를 모두 해본 경험과 더불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시장을 리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시장이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 개발의 낭비를 줄이고, 비의료 쪽 계약을 하는데 있어서도 의사 출신이 직접 나설 경우 상대방이 느끼는 호의도와 신뢰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덤으로 있다.
 
단점은,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순간 의료계 내에서는 ‘을’이 된다는 거다. 의료계는 상업적인 것이 학문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을 견제하는(Complicit of interest)게 강하다. 그러나 이 부분은 스스로 마인드를 재정립하면 해결된다. 진료할 때 환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던 것처럼, 의사 고객이 요구하는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으면 된다.
 
그래서 요즘은 ‘예전에는 병원 소속이었지만, 이제는 FA(자유계약선수)가 됐으니 이제 여러분 모두의 소속입니다’라며 더 많은 의사 선후배를 만나고 있다. 무엇보다 유전체 사업에 있어서 본인의 역할은, 이론과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해 의사들의 유전체학 공부에 대한 열의를 충족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의사 후배들에게 한 마디
 
딴짓에 관심이 가도 섣불리 딴짓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한 번에 뛰어들기 보다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산업체에서 근무하는 경험으로 시작해보길 권한다. 작은 회사나 스타트업 역시 비용 측면에서 의사를 채용하는데 대해서는 부담을 갖고 있다. 지금 당장에 더 많은 수익을 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접고, 벤처든 작은 회사든 서로의 부담을 조금씩 덜어 한 발 내디뎌 보는 게 어떨까 생각해본다.
 
유전체 시장은 점점 고도화·전문화되고 있기 때문에, 트렌드만 따르지 말고 지식을 쌓는 활동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의료 외에도 다학제 측면에서 다양한 공부를 해보기를 바란다. 또 박람회 등에 참여해 기업과 연결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유전체는 어차피 대학병원 의사에게도 낯선 분야다. 내가 그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도전해보시라.  
 
의사의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 같다. 지금까지는 자본의 투자에 의한 양극화였지만, 앞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지식에 의한 양극화가 발생할거라 생각한다. 새로운 지식에 대해 열려있는 자세를 가져야 새로운 의료환경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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