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포스텍 의사과학자 양성 의대 설립 추진…의료계는 회의적

일정 기간 임상진출 규제 바람직하지 않고 의사과학자가 양성될 수 있는 지원 자체가 중요

각각 의학전문대학원과 의과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KAIST와 포스텍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최근 카이스트(KAIST)와 포스텍이 각각 의학전문대학원과 의과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의사과학자 양성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의사과학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사회적 분위기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 의전원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료계는 우려했다.

4차 산업혁명∙바이오 메디칼 분야 성장…카이스트∙포스텍 "의사과학자 양성하겠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더해 바이오∙의료 분야가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최근 국내에서도 의사과학자 양성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어느 때 보다 커지고 있다.

8일 학계에 따르면 카이스트와 포스텍은 이 같은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듯 융합형 의사과학자∙공학자를 양성하겠다며 의전원∙의대 설립 추진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기존 의대를 졸업한 이들이 대부분 임상으로 진로를 택하는 상황에서 의사과학자를 키워내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카이스트는 올해 초 이광형 신임 총장이 취임한 이후 의전원 설립에 본격 드라이브를 거는 중이다. 이 총장은 지난 3월에 있었던 취임식에서 “의사과학자∙공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공동연구 네트워크 플랫폼 병원을 구축해 바이오∙의료 산업에 연구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의전원 설립 추진을 공식화했다.

포스텍도 지난해부터 경북도, 포항시 등과 함께 포항 의과대학 유치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의대 설립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공학과 ICT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의대 및 병원을 설립하고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 기관에 용역 의뢰한 연구 결과가 나오면 올 하반기 중으로 정부에 의대 설립을 건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대 의대 설립 '실효성' 의문…임상 진출 막기 어렵고 법적 규제 바람직하지 않아

하지만 의료계는 개별 대학 차원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별도로 의대∙의전원을 만드는 것은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학 등 여러 분야와 협업해 온 A의대교수는 “의전원 사례에서 보듯 단순히 교육을 기존의 의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한다고 해서 의사과학자가 원하는대로 배출되진 않을 것”이라며 “정부와 몇몇 지역에서 공공의대와 신설 의대를 유치하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B의대 기초의학교실 교수 역시 기존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의전원∙의대를 설립한다해도 의사과학자 배출에서 획기적 변화가 있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초 교수들만 있다면 모르겠지만 카이스트와 포스텍도 병원을 만들려면 임상교수들이 있어야 한다”며 “학생들은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처음엔 의사과학자를 하려고 들어왔다가도 임상을 택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존 의대와 차별점이 없어지는 셈인데 그럴 바엔 거기에 투입될 재원을 현재 상황이 열악한 소규모 의대들에 투입하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학생들이 졸업 후 임상으로 이탈할 것이란 우려에 대해 카이스트는 법적 규제를 만들어 일정 기간 임상 진출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까지 내세웠지만, 의대 교수들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연구자들의 연구 의지는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다, 되레 그러한 규제가 의사과학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B 교수는 "실제로 과거 일본의 한 의전원에서 의사과학자 배출을 위해 MD PhD 과정을 필수적으로 밟아야 하는 TO를 별도로 만들었다가 역효과를 보기도 했다"라며 "해당 TO의 경쟁률이 낮아 기존 TO에 합격이 어려운 학생들이 입학했다가 유급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 의사과학자에 대한 부정적 낙인이 찍힐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NIH의 연구중심병원 '빌딩 10'

의사과학자, 불투명한 미래∙낮은 사회적 인식…기초의학 키우려면 정부 지원 필수

이에 의대 교수들은 규제 대신 정부가 불투명한 의사과학자의 진로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인식을 제고해 의사과학자들이 안정적으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은 '빌딩 10(Building 10)'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클리니컬 센터를 예로 들었다.

지난 1953년 문을 연 빌딩 10은 수익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신 현대 의학으로 치료 불가 판정을 받은 환자들만 진료하며 의학 발전에서 큰 역할을 담당해왔다. 빌딩10이 '희망의 집(House of Hope)'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한 이사장은 “임상 쪽으로 가면 대략 미래가 그려지는 반면 연구의 길을 택하면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이 큰 문제”라며 “빌딩 10처럼 연구중심의 병원을 만들어 연구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나가면 자연스레 의사과학자들도 늘 수 있겠지만 개별 사립대학 차원에서 추진키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 의료계는 다른 나라에서 밝혀진 의학적 지식을 빠르게 적용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 그치고 있다”며 “정부가 세계 의학 발전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기초의학과 연구자들을 육성하기 위한 제도 지원과 투자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B 교수 역시 우수한 의사과학자를 대거 배출해 온 미국에 비해 국내 상황은 열악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은 MD, PhD 길을 택한 이들에게 학비 면제, 장학금 등 막대한 재정적 지원에 더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각종 혜택을 준다”며 “향후 어떤 진로를 택하더라도 다른 의사들에 비해 더 수월하게 취직할 수 있는 환경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령 국내에서는 연구를 위주로 하되 환자 진료도 일부 병행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병원은 연구와 진료 양 극단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다”며 “그런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많이 만드는 병원에 정부가 혜택을 주는 등 의사과학자가 대우 받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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