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쟁점은 '심평원 위탁'…의료계, 외로운 싸움

여당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토론회 개최…보험업계 찬성 의견 속 의협 "보험갱신 및 가입 거절 늘어날 것"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새 정부의 '디지털플랫폼 정부 보건의료 선도과제'로 꼽히면서 여당도 관련 법안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가운데, 관련 법안에 포함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위탁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 금융위원회, 대한의사협회, 손해보험협회, 보험연구원, 보건사회연구원 등이 참여하고 있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TF'에서도 이견을 가진 단체는 의사협회 하나뿐인 상황으로 올해 안에 결판을 내겠다는 정부 의지와 함께 의료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14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열린 실손보험금 청구간소화 '실손비서' 도입 토론회에서도 의료계는 홀로 관련 보험업 법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 외로운 싸움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토론회는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주최로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 한국소비자단체연합, (사)소비자와함께가 주관해 소비지단체, 보험연구원, 법조계와 함께 의료계 대표도 참석했는데 사실상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입장은 의료계가 유일했다.

실제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 권고로 공론화된 문제로 2015년 금융위원회의 실손의료보험 간편 청구제 추진에 이어 국회에서도 청구 간소화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현재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제21대 국회에 발의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관련 법안은 총 6건으로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고용진, 김병욱, 정청래 의원과 정의당 배진교 의원 등이 대표발의했다.

각 법안은 환자의 실손보험 청구의 번거로움을 해소한다는 명목 하에 피보험자가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 절차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요양병원으로 하여금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서류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의료계, 실손보험 청구 '심평원'에 위탁에 반대…"보험사, 환자 진료 정보 집적 가능해져"

이날 토론회에서 유일한 의료계 참석자인 대한의사협회 김종민 보험이사는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서비스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기관인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해 의료기관에 보험사로의 청구를 강제화하는 법안에 반대한다"고 명확히 말했다.

의료계는 일찍부터 이미 민간 핀테크 업체의 중계 서비스를 통해 병원에서 청구가 가능한 상황으로, 이 같은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할 용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의료계가 현 보험업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조기 구축을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중계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간 보험업계는 심평원이 KT-EDI를 이용해 전국 9만 4000여개의 의료기관과 연결돼 조기구축에 용이하다고 주장하며 관련 법안에도 ‘심평원 위탁’ 내용이 빠지지 않고 포함됐다.

이에 대해 김 보험이사는 “이미 KT-EDI는 시장에서 사장된 기술로 대부분 의료기관은 전용선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진료비를 청구하고 있다. 심평원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건강보험 급여 영역에 한정된 것이며 비급여의 경우에는 다시 소프트웨어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며 청구간소화를 위한 중계기관으로 지정되더라도 전용망을 사용하려면 청구망과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반박했다.

또 공공기관의 장은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기업 또는 단체 등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중복되거나 유사한 서비스를 개발,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공공데이터 제공 및 이용 활성화 법률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사진=실손보험금 청구간소화 ‘실손비서’ 도입 토론회 자료집

나아가 실손보험은 상환제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의료기관은 보험금 청구와 지급에 관여되지 않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심평원 중심의 청구간소화 추진으로 제3자인 의료기관에 청구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상환제의 기본 구조를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이다.

무엇보다 김종민 보험이사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를 강제 이행하게 되면, 소액 보험금 청구 증가에 따라 보험금 지급률은 증가할 수 있으나 보험사가 환자의 진료 정보를 집적할 수 있게 되고, 환자의 보험갱신 및 가입 거절이 증가해 보험금 지급 증가분이 환자의 피해로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따라서 김 보험이사는 “의료계는 심평원 등 공공기관을 중계기관으로 지정하지 않으면서, 정보 집적과 심가기전이 없는 민간 주도 형태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를 원한다. 특히 실손보험 청구 시 가입자의 청구에 대한 자기 결정권도 함께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의 이 같은 우려와 달리 이날 토론자들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통한 효과를 강조하며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개인정보 보호‧편의성‧안정성‧지속성‧비용 효과성 측면에서 '심평원' 위탁 찬성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의료계의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날 토론회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한 찬성 의견이 연이어 제기됐다.

성균관대 소비자학과 이성림 교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당사자인 소비자, 보험사, 의료기관 모두의 거래비용을 절감시켜주고, 운송거리 단축 및 종이 소비 절감에 따른 자원 절약 및 탄소배출 경감 효과와 업무 디지털화를 통한 경제적 효율 추구 및 디지털 경제 참여의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교수는 "의료계 반대는 업무의 디지털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소비자에게 편익을 제공받기 위한 개인 정보제공에 동의하거나 거부하는 선택권 제공이며, ICT 기술 발달로 자료의 전자적 전송, 처리, 보관 비용의 획기적인 감소가 기대된다"고 전했다.

나아가 "청구절차의 효율화에 반대하는 의료계의 반발은 소비자의 의료계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사)소비자와함께 강성경 사무총장은 실손보험 소비자 입장에서 청구 간소화 서비스에 찬성하면서, 의료계가 주장하는 민간 핀테크 업체를 이용한 간편 청구 추진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개인정보와 의료진료 정보에 대한 보안문제를 지적하며 국가기관인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강 사무총장은 “의료계에서 제기하고 있는 민간 핀테크업체를 통한 간편 청구시스템은 현재 150개 대형병원과 제휴 중이고 국내 전체 의료기관 97만개 중 0.1%로 수준이다. 일반 의료기관에서는 전혀 도입하고 있지 않고, 이처럼 자율적으로 도입하라고 하면 앞으로 10년은 더 걸릴 것 같다”고 꼬집었다.

또한 "민간 핀테크업체는 불가피한 사업 중단이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민간 핀테크업체를 통한 청구 간소화보다는 보다 신뢰성 있고 안전한 국가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중계기관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보험연구원의 정성희 연구위원은 의료계가 지적한 실손보험 청구전산화로 보험가입, 보험금 지급심사가 강화된다는 주장은 오해라고 반박했다. 

정성희 연구위원은 "청구 전산화로 보험사가 받는 증빙자료는 현재와 동일하고, 청구전산화는 실손보험 가입·보험금 지급 심사와는 별개의 문제로, 청구만 전산화하는 것일 뿐, 기존과 동일한 증빙자료를 제출받는 상황에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가입 또는 연장을 거부할 사유가 없다. 오히려 청구전산화가 되면 보험회사는 전산화된 자료를 바탕으로 전산심사나 자동심사가 가능해져 보험금 지급이 신속·정확해 질 수 있다"고 반박했다.

나아가 청구전산화 중계기관으로 심평원을 선택하는 것이 ▲개인정보 보호 ▲이용 편의성 ▲안정성 ▲지속성 ▲비용 효과성 측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라고도 밝혔다.

정성희 연구위원은 "심평원은 공공기관으로, 다양한 전자청구시스템 운영 경험 등을 보유하고 있어 민간 중계업체에 비해 체계적인 정보보안이 가능하다. 또 심평원은 이미 전국 약 9만9000여개 의료기관과의 전산망 연결돼 있어 비용 효과성 측면에서도 우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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