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주전자와 의과대학 5년제

[칼럼] 한상현 미래의료포럼 정책홍보위원∙연세대 의학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옆집 이웃에게서 주전자를 빌렸다고 치자. 그런데 앗! 실수로 깨뜨려 버렸다. 깨진 주전자를 돌려주자 이웃은 화를 내며 따진다. 자, 어떻게 변명해야 할까?
 
당황하지 말자.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가 알려주는 모범답안이 있다.
첫째, “분명히 돌려줄 때 말짱했는데?”
둘째, “게다가 내가 빌렸을 때 이미 깨져 있었어.”
셋째, “애초에 내가 언제 주전자를 빌렸다는 거야?”
 
논리적인 독자라면 이 변명이 말도 안 된다는 걸 금방 눈치챌 것이다. 각각은 몰라도 셋은 절대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 빌리지 않은 주전자를 돌려줬을 리도 없고, 빌릴 때 깨져 있었는데 돌려줄 때는 말짱했을 리가. 이 ‘깨진 주전자 논리’는 다급한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망상의 전형적 사례다.
 
의대 5년제 단축을 두고 온갖 코미디가 난무한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깨진 주전자 하나가 어른거린다. 대통령실에서는 “6년을 5년으로 단축한다는 말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단다. 어, 분명히 교육부가 “(5년제 정책은)의대 학장들과 논의하고 발표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편으로 “의대생이 내는 휴학은 휴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정부 기조다. 그러면 다들 잘 다니고 있는 중인데 5년제가 필요할 정도로 의사가 부족해졌다는 말인가. 스스로도 논리가 맞지 않는 망상이요, 무의식 수준으로 망가진 언어다.
 
애초에 5년제가 뭔지도 난해하다. 처음 기사를 보고는 ‘신입생들의 예과를 줄이겠다는 뜻인가?’생각했는데, 지금 재학생들부터 적용되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러면 휴학중인 본과 4학년 학생들은 이제 의사가 된 건가? 만약 거부하면 복지부 공무원이 쫓아다니면서 의사면허를 강제로 붙여주는, 꿈속에나 나올 법한 허무맹랑한 장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그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말하는 사람도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생각해 보니 깨진 주전자가 의대 5년제 하나만이 아니다. “대학병원은 정상 운영 중” 이면서 동시에 “전공의들이 돌아와야 한다”고도 들은 기억이 난다. “아무 조건 없이 논의가 가능”하지만 “25년 증원은 논의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꾸 소통을 하자고 한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나.
 
그러나 진짜 비극은 이 횡설수설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이 모든 말들이 장관입네 수석입네 하는 ‘높으신 분’들의 어록이라는 게 문제다. 스스로도 논리를 일치시킬 수 없는 이들의 손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려 있는 것이다. 오호, 통재라! 마약중독자의 손에 쥐어진 핵폭탄을 보는 심정이 이럴까.
 
그런 위험한 사람을 보면 막겠다고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나으리라. 소시민으로서 잘 알지만 박절하지 못한 성격이라 굳이 한 말씀 올린다. 정부 스스로도 말을 맞추지 못하는 잠꼬대, 부디 그만하시라. 겨우겨우 돌아가던 의료를 통째로 뒤집어 놓은 ‘2000’ 잠꼬대에 온 나라가 고통받고 있다. 이제 그만 이 악몽에서 깰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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