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살려내던 응급의학과, 정작 죽어가는 이유…“이것 해결 못하면 폐과”

응급의학과 의사들 "사법 리스크 완화" 한목소리…불필요한 이용 제한·배후 진료과 지원 등도 촉구

8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응급의료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죽어가는 응급의학과를 살리기 위해 사법 리스크 완화, 응급실 이용에 대한 적절한 제한, 배후 진료과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벼랑 끝 응급의료, 그들은 왜 탈출하는가’ 토론회에 참석한 응급의학 전문가들은 응급의학과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해결책들을 제시했다.

사법 리스크로 기존 인력 탈출·지원자 감소…의료사고특례법 시급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류정민 교수는 응급환자 수용 거부 금지를 골자로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응급실 수용 곤란 고지 관리 표준 지침안을 언급하며 사법 리스크 문제를 지적했다.

응급 처치 후 최종치료를 할 진료과 인력이 없거나, 응급실이 이미 환자로 꽉 차있는 상황에서 환자를 무턱대고 받도록 하고 법적 처벌 위험은 그대로 둔 건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류 교수는 “속칭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사법 리스크가 가장 크다”며 “응급의료 시스템은 만성적 저수가로 인한 인력 부족을 의료진의 자부심으로 극복해 오고 있었는데, 최근에 사법리스크가 크게 부각되며 의료진이 탈출하고 지원도 줄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지원이 감소하면 인력 부족이 더 심해지고, 그러면 사법 리스크가 더 올라가니 악순환이 된다”며 “사법 리스크나 수가, 사회적 불신 이런 것들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우리나라 응급의료는 얼마 안 가 멸종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류 교수는 “국회가 실효성 있는 의료사고특례법을 빨리 마련해 달라”며 “현재 정부안에는 일반상해, 중상해는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공소권이 없지만 사망의 경우 일단 기소가 들어가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분쟁 조정절차나 재판 과정에서 소수의 자문의사 의견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전문성과 투명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류정민 교수,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무조건 큰 병원 가는 환자들, 응급실 과밀화 심각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배제한 정부 정책이 지금의 응급의료 위기를 만들었다고 비판하며, 국민들이 응급실을 너무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역의 응급실에서는 경증환자를, 큰 병원에서는 중증환자를 치료하라는 건데, 내용만 보면 아름답지만 이게 바로 탁상행정”이라며 “환자에게 병원 선택의 자율권이 무한정으로 제공되는데 작은 병원을 가겠나”라고 했다.

이어 “(응급의료 등에 대해) 돈과 법으로 장벽을 두는 나라들도 있다. 그런 곳들의 공통점은 의료기관을 이용하기 매우 불편하다는 것”이라며 “불편해야 이용을 덜 하기 때문이다. 응급의료는 한정적 재원이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돼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벼랑 끝에 몰린 응급의학과에 심폐소생을 할 방안으로는 류 교수와 마찬가지로 사법 리스크 완화를 꼽았다. 

이 회장은 “이거(사법 리스크) 하나 해결되면 응급의학과 아직 죽지 않는다. 하지만 해결이 안 되면 폐과하는 게 맞다”며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매일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고 있는 게 아니고 이미 감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제 문만 닫으면 잠기는 상태”라고 했다.

응급실서 받아도 배후 진료과 열악…입원 어렵고 전원도 불가

응급의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응급 처치 후 최종 치료를 담당하는 배후 진료과들에 대한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소아전문응급센터 의사 출신인 이주영 의원은 “응급실에서 (환자 수용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서 바닥에 담요 깔고 뭐라도 해주는 게 좋지 않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일면 이해는 가지만 모든 치료에 적정한 시간이 있는 의료진 입장에서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의료행위는 사실 생각보다 매우 적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 응급실에선 급한 불을 끄고 입원을 시키든가, 전원을 보내는 게 중요한데 지금은 입원이 안 되는 소아과나 외과, 내과 혹은 중환자실이 무너져 있고 전원을 보낼 병원도 없다”고 토로했다.

건국대 소아응급의학과 정현정 교수는 “소아전문응급센터에서 배후 진료가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지 보기 위해 확인해봤더니, 10개 센터 중 소아중환자실과 소아중환자 전문의가 따로 있는 곳은 10곳 중 5곳이었다”고 했다.

이어 “소아응급의학과 전문의는 10명인데 소아중환자실이 없고 소아신경외과, 소아흉부외과 없는 곳도 있다”며 “소아응급중환자실이 명목상으로 소아전문응급센터에 딸려 있긴 하지만 소아응급 중환자 입원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배후 진료과가 이렇게 망가져 있다. 어디 수가를 올려준다는 식으로 핀셋 지원해서는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그나마도 소아응급전문센터에 수술과라든지 영상의학과에 있는 교수들도 대부분 50대다. 은퇴하고 나면 후학이 없다”고 우려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출신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국회 토론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복지부 "이송∙전달체계 및 과밀화 개선 추진 중"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와 관련해 이송체계, 전달체계, 과밀화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 정혜은 응급의료과장은 “이송체계와 관련해선 Pre-KTAS(병원 전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체계) 도입과 이송 지침 등을 추진하고 있다. 컨트롤타워로서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을 개소했다”며 “이 외에도 지자체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자율적으로 모색하는 수단도 강구하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전달체계와 관련해선 권역센터, 지역센터, 지역응급의료기관 이 3단계 체계를 조금 더 기능적으로 강화하는 최종 치료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달체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에 따른 보상도 당연히 따라갈 거고, 순환당직제 등 지역별 네트워킹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과장은 응급실 과밀화 문제에 대해선 “국민의 인식 개선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한다”며 “일단은 홍보라든지 셀프 트리아지 앱을 통해 증상에 따라 어느 병원으로 가야할지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 경증환자에 대해선 어느 정도 부담을 통해 이용제한을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학회나 협회와 애기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출신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박 위원장은 따로 발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토론회 중간 중간 참석자들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는 등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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