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국내 뇌혈관외과 의사 현실은 이렇습니다

[칼럼]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칼럼은 '근무 중 쓰러진 간호사 타 병원 이송 후 사망' 기사에 댓글을 작성한 신경외과 교수 본인의 허락을 받고 재인용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서울아산병원 현직 간호사분이 그것도 근무중에 쓰러졌는데 수술을 집도할 뇌혈관외과 의사가 없어 전원 끝에 사망했다는 사실 자체는 매우 안타깝고 충격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댓글을 보면 그 큰 병원에 학회∙지방 출장으로 부재중이어서 수술을 할 의사가 없는 것에 공분해 의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나이 50대 중반의 뇌혈관외과 교수로서 참담한 심정으로 말씀드립니다. 사건의 본질은 우리나라 빅5 병원에 뇌혈관외과 교수는 기껏해야 2~3명이 전부인게 현실이며, 그 큰 서울아산병원도 뇌혈관외과 교수는 단 2명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날 한 분은 해외학회 참석중이셨고 또 한 분은 지방 출장중이셔서 뇌혈관외과 교수가 아니라 뇌혈관내시술 전문 교수가 색전술로 최대한 노력했으나 결국은 출혈 부위를 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머리를 여는 개두술이 필요한데 할 수 있는 의사가 병원에 없으니, 뇌혈관내시술 전문 교수는 파장이 커질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간호사인 환자를 살려보려고 서울대병원으로 보내 수술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날 서울아산병원의 당직 뇌혈관내수술 전문 교수는 본인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큰 병원에 뇌혈과외과 교수 2명이서 1년 365일을 '퐁당퐁당' 당직 서서 근무하는 것이 과연 나이 50세가 넘어서까지 가능할까요. 국민의 몇 %가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과로하면서 근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의사도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라 실력있는 의사가 되려면 세계 학회에 참석해 유수한 세계적 의사들과 발표하고 토론해야 수준이 올라갑니다. 의사의 해외학회 참석을 마냥 노는 것으로만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뇌혈관수술의 위험도와 중증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해당 분야 지원자도 급감한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그나마 뇌혈관외과 의사를 전임의까지 트레이닝 시켜놓으면 대부분이 뇌혈관외과 의사의 길 보다는 머리 열고 수술하지 않는 뇌혈관내시술(신경중재시술) 의사의 길을 선택합니다. 큰 대학 병원이나 뇌혈관외과 교수가 2~3명이라도 있지 중소병원이나 지방 대학병원에는 1명만 있거나 아예 없습니다.
 
그렇다고 뇌혈관내시술 의사가 뇌혈관외과 의사보다 편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뇌혈관내시술은 시술 자체가 뇌혈과외과수술에 비해 시술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머리를 직접 열지 않으니 의사들이 그나마 육체적으로 수술에 올인하는 시간이 적어 그 쪽으로 지원을 더 많이 합니다.
 
그래서 현재 국내에서 40대 이상의 실력있는 뇌혈관외과 의사는 거의 고갈 상태로 가고 있습니다. 제가 뇌혈관외과 의사로서 살아보니 세계 유수의 의사들과 실력을 경쟁할 정도의 수준이 되려면 우리나라처럼 의사를 기계 소모품처럼 24시간 돌리는 상황에서도 40대 중반은 돼야 합니다.
 
그것도 빅5병원처럼 1년에 휴가 10일정도 외에는 일만 하는 기계처럼 근무해야 가능한 정도입니다. 이러니 자라나는 젊은 의대생들이 신경외과, 특히 뇌혈관외과를 지원할 리 없고 그나마 브레인 서전(Brain surgeon)을 하려고 꿈을 가지고 들어온 신경외과 전공의들도 수련을 마치고 나면 현실의 벽에 절망해 대부분 척추 전문의의 길을 택합니다. 현직 뇌혈관외과 의사로 살아보니 마치 한일합방시대에 독립운동하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환자가 밤에 뇌출혈로 급하게 병원을 찾았을 때, 실력있는 뇌혈관외과 의사가 날밤 새고 수술하러 나올 수 있는 병원은 거의 없습니다.  국민들도 이런 현실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중증의료분야 지원, 뇌혈관외과분야 지원 이야기가 나오면 ‘의사들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주고 의사들에게 힘을 실어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얘기를 해도 보건복지부와 정치권은 ‘중증의료’ 이야기만 하지, 정작 신경외과는 필수진료과(내과∙ 외과∙소아과∙산부인과)에서도 빠져 있는 상황입니다. 매번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느낌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존경했던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가 중증 치료에 매진하다가 나가 떨어진 배경을 국민들도 아셨으면 합니다. 
 
이번 사건은 책임자를 처벌하고 끝나는 식이 아니라 고갈돼 가고 있는 뇌혈관외과 의사를 보호하고 실력있는 후학 양성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공공의대를 세워서 의사 수 늘린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닙니다. 돈은 못 벌어도 자기 인생을 걸고, 실력있는 뇌혈관외과 의사가 돼서 국가와 민족에 이바지하겠다는 젊은 의사를 키워야 합니다. 하지만 대학병원 뇌혈관외과 교수들조차 일의 강도나 스트레스에 비해 개인적인 희생이 너무도 크니 교수직을 그만두고 개원가로 나가는 실정입니다. 
 
지난 주에 프랑스에서 의과대학 5학년 학생 한 명이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를 2주간 견학하러 왔습니다. 이 학생은 "프랑스에서는 의사들, 특히 중증 의료전문 의사들은 너무나 없고 국민들은 MRI를 한 번 찍을려면 3개월 대기가 기본이라 의사들 욕을 그렇게 한다”며 “정작 프랑스 의사들은 프랑스에서 의사 근무 조건이 열악하니 스위스나 두바이 등으로 이직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프랑스 의료 자체가 큰일”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완전 자본주의’ 의료가 가장 좋은 것도 아니고, 유럽∙프랑스같은 ‘사회주의 의료’는 현실은 더욱 아닙니다. 한국의 의료 접근성과 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것은 정부도 정부지만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들의 노력과 희생의 결과라는 것을 국민들이 제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의사가 될 수 있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중증의료제도 지원 개선책 마련에 현직에 있는 저같은 의사도 한 목소리 낼테니 국민들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세상은 점점 밝아지는 쪽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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