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설립 촉매제 될까...제주녹지병원 내국인 진료 금지 '부당' 판결 여파는

제주도 외 8개 경제자유구역서도 영리병원 설립 움직임 우려...내국인 진료 영향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녹지국제병원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법원이 녹지국제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도록 한 병원 개설허가 조건이 위법이라고 판단하면서 수 년간 잠잠했던 영리병원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특히 이번 판결이 상급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경우, 제주특별법이 적용되는 제주도뿐만 아니라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한 8개 경제자유구역(인천, 경기, 동해안, 충북, 대구경북, 광주, 광양만, 부산진해, 울산)에서 영리병원 개설 움직임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녹지제주, 개설허가 취소처분 취소 소송 이어 내국인 진료 제한 취소 소송서도 승소

5일 제주지법 행정1부는 중국 녹지그룹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녹지제주)가 진료 대상을 외국인으로 제한한 조건부 허가가 위법하다며 제주도를 상대로 낸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영리병원 개설허가가 요건이 충족되면 법에 따라 그대로 처분해야 하는 기속재량행위라고 봤다. 기속재량행위는 법률상 근거 없이 조건을 붙일 수 없기 때문에 내국인 진료 금지 조건은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2017년 본격화됐다. 제주특별법은 외국인 투자 비율이 출자총액의 50% 이상이거나 미화 500만 달러 이상의 자본금을 가진 외국계 의료기관에 한해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녹지제주는 2017년 8월, 800억원 상당을 투입해 녹지국제병원을 건립하고, 제주도에 개설 허가 신청을 냈다. 하지만 영리병원 반대 여론이 거세지면서 당시 원희룡 도지사는 내국인 진료 금지를 조건으로 개설을 허가했다.

녹지제주는 이에 반발하며 개원을 연기했고, 제주도는 개설 허가 후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조항을 근거로 2019년 4월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이후 녹지제주는 제주도를 상대로 개설허가 취소처분 취소 소송과 내국인 진료제한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개설허가 취소처분 취소 소송의 경우 1심에서는 제주도가 승소했으나, 이후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은 녹지제주가 예상하지 못한 조건부 허가와 허가 지연 등으로 인해 개원 준비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3개월 이내에 병원을 열지 못한 정당한 사유가 있어 개설 허가 취소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제주도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올해 1월 대법원이 제주도의 상고를 기각하며 녹지제주가 최종 승소했다.

녹지제주는 개설허가 취소처분이 취소 소송에서 승리한 데 이어 이날 내국인 진료 제한 취소 소송 1심에서도 승소하면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됐다. 

다만 상급심에서 이 같은 판결이 유지되더라도 녹지제주가 실제 영리병원을 개설 및 운영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녹지제주는 이미 건물 및 토지소유권을 국내 법인에 매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이를 근거로 재차 개설허가 취소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제주도는 물론 경제자유구역법이 적용돼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한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 설립 바람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지난 2014년 당시 유정복 인천시장은 송도에 300병상 규모의 영리병원 건립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으며, 부산 역시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내에 영리병원을 유치하려 한 바 있다.

의협∙노조 "영리병원 확산 우려"...내국인 진료 영향 크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이 같은 우려 탓에 대한의사협회와 노조는 이번 판결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이번 판결은 기존의 의료법을 뒤집고 영리병원을 합법화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며 “영리병원의 도입은 대형 자본 투자로 이어지고, 결국 의료는 이윤창출의 도구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영리병원은 소위 돈이 안 되는 필수의료과목을 진료과목에서 퇴출할 것이고, 필수진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들은 거대 자본을 앞세운 영리병원들의 횡포에 밀려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의료노조 박민숙 부위원장은 “애초에 제주도가 개설허가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꼼수 허가를 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며 “코로나19로 공공병원의 필요성이 크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에서 법원이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의료 민영화의 빗장을 연 셈이다. 이를 계기로 여기 저기서 영리병원을 유치하겠다고 나서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와 달리 영리병원 내국인 진료 허용이 미칠 여파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임준 교수는 “영리병원은 당연지정제의 예외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그런 상황에서 내국인 대상 진료를 한다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겠나. 결국 영리병원은 외국인 관광객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내국인 진료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최초의 ‘영리병원’이 갖는 상징성으로 인해 그 정치적 의미는 작지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여러 갈등 요소들이 일시에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간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도에서는 영리병원이 허용돼 있었음에도 실제로 개설된 사례는 없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들 지역에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타당한 지를 놓고 재차 논쟁이 일어날 수 있다”며 “또한, 차기 정부가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는 비대면 진료 등과 함께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의료의 산업화를 촉진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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