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과학자 양성? 교육 통한 동기부여∙성공한 롤 모델 '관건'

[2022 대한의학회 학술대회] 과거 대비 크게 준 기초의학 교육시간 지적...의사과학자 성공 사례 축적 필요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최근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바이오와 디지털헬스케어를 향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해당 분야를 이끌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16일 더케이호텔 서울에서 열린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우리나라 의대 교육과정은 의사과학자 양성에 적절한가’라는 제하의 세션이 진행됐다. 세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학부 시절부터 기초의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배들이 비전을 가질 수 있는 롤 모델의 중요성도 언급됐다.

기초의학 수업∙실습시간 대폭 감축...학생들 의사과학자 꿈 꿀 기회 줄어

발제자로 나선 대한기초의학협의회 김인겸 부회장은 의사과학자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달리 의대 교육과정에서 기초의학 수업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지난 2020년 기초의학과목 중 단독과목 강의와 실습 시간은 도합 729시간에 그쳤는데 이는 지난 2014년 1200시간이 넘던 것에 비해 크게 쪼그라든 것이다. 같은 기간 기초의학교실 평균 실험 실습비도 1억680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의사 국시에 기초의학 교과목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것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김 부회장은 “학생들 입장에선 국시 부담이 증가하니 원하지 않고, 일부 의대의 경우 기초의학 교수를 충원해야 하니 달가워 하지 않는다”며 “임상 교수들은 기초의학을 중요치 않게 여기고 국시원도 시험을 더 많이 치뤄야 하니 관리가 힘들어 기초의학 포함을 꺼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기초의학 수업이 줄어들면서 의대생들이 의사과학자를 지망할 확률도 자연스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김 부회장은 임상술기시험을 방학기간에 시행하고, 4학년 2학기를 정상적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새로운 교육 과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의학교육 평가인증에서 기초의학 교육 관련 평가 기준을 강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과거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실패했던 MD-PhD 과정을 현행 6년제에서 다시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했다. 의대에 입학하면 바로 석∙박사 코스와 연결되는 통합(연계) 과정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원 외 입학, 전면 장학생, 군 대체 복무 등의 요소를 포함하고, 졸업 후 일정기간 교육∙연구기관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고려의대 기선호 교수 역시 기초의학 수업시간이 과도하게 줄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실습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기 교수는 “실습이 한 번 줄면 강의 시간을 3~4시간 아끼는 효과가 있다보니 실습이 먼저 줄어들었다”며 “실습은 학생들이 교수와 직접 만나 과학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데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실습은 전공 교수의 자질 평가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실습을 못하는 교수는 그 과의 전공자로서 자질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실습을 통해 의사과학자로서 자질을 양성할 기회가 사라지면서 MD-PhD와 같은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 경우엔 기회가 특정 학생들에게만 제공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세의대 안신기 교수는 모든 학생들이 연구의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디자인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연세의대는 ‘연구 멘토링’을 통해 모든 학생들이 연구제안서 작성부터 연구집 출간까지 일련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교육 과정 개편 이후, 학생들이 SCI급 논문에 참여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했다.

전공의들의 경우엔 연구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레지던트들이 수련을 하면서도 연구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시간과 자금 측면에서 배려가 필요하다”며 “전공의 양성에 대한 사회적 자본 투여를 위해 의료계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의사과학자 성공 사례 쌓여야 후학들 늘어날 것...급여는 핵심 요인 아냐

서울의대 신현우 교수는 의사과학자들의 성공 사례가 축적되는 것이 향후 같은 길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신 교수는 “의사과학자는 의사이지만 연구개발에 방점이 찍힌 포지션”이라며 “의사들이 의대, 바이오, 다국적 제약사의 연구개발 분야에서 의학을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했다.

이어 “실제 최근 하버드 HST(Health Science and Technology) 프로그램을 졸업한 학생들의 경우 절반 이상이 임상에서 활동하지 않는다고 한다”며 “(국내에서도) 향후 의사과학자들의 다양한 성공 사례가 나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카이스트(KAIST) 김하일 교수는 학생들이 기초의학을 선택하지 않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들이 병원 밖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며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했다.

김 교수는 “과거에 비해 개원가의 수익은 줄고, 기초의학 분야의 월급은 늘었지만 기초의학 인력은 줄었다. 급여가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미”라며 “하락세를 반전시키기 위해선 원인이 무엇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기존에 일차진료 양성이었던 의학 교육의 목표도 이제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범위를 넓혀야 한다”며 “실제 카이스트에 가고 나서 의사들 스스로가 병원이란 울타리 안에 자신들을 가둬놓고 있었단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연세의대 김철훈 교수는 학생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김 교수는 “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은 연구를 하겠다고 결심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월급이 아니다. 내가 이 분야를 선택했을 때 탑 티어에 속할 수 있는가 여부”라며 “탑 티어에 올라 만족도도 높고, 보람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되면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이건 우리같은 선배들의 책임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어 “실제 해외 학회에 가서 훌륭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분들을 보면 임상에서 뛰어난 의사들 못지 않게 멋있어 보인다. 그런 순간에 자극이 되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이 같은 과정에서 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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