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정부와 의사들 간의 내전 중

[칼럼]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세계의 눈이 전쟁, 내란, 기아, 자연재해, 미국 대선 등 요동치는 국제정세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국민소득 3만불을 넘은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상식이나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내전이 진행 중이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자해행위를 하고 있다. 그럼 이 내전의 당사자는 누구인가? 대통령과 의사들 간의 싸움이다. 누가 시작했나? 놀랍게도 대통령이다. (그런데 국무총리는 ‘전공의가 이 싸움을 시작했다’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다).

대통령이 자기 나라 의사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나? 그런데 이 내전의 직접 피해자는 애꿎은 국민, 특히 아픈 국민, 노인, 약자들이다. 이들에게로 불똥이 튀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대한민국에서 지인들 간의 인사가 ‘아프지 말아라, 다치지 말아라, 넘어지지 말아라’이다. 농담이 아니다. 어쩌다가 이런 인사말이 일상이 되었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아프지 않은 대다수 국민은 관심조차 없다. 평소에 의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이 부분은 의사들이 반성해야 한다) 국민은 심지어 이 싸움이 속 시원하다고 느끼고 있다. 정치인도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필요하면 인맥을 동원할 수 있으므로 아파도 진료받지 못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인이 의사들을 ‘때리면’ 국민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재앙의 끝이 훤히 보이는 의사들과 일부 지식인들 만이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고 있다.
 
2년 반 후 다음 정권이 들어서서 지금 빛의 속도로 추진되고 있는 ‘의료 개악’을 중단한다고 해도 지금의 높은 의료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최선을 다해도 아마 수십년은 더 걸릴 것이다. 다음에 어떤 정권이 들어설 지는 또 다른 불안 요인이긴 하지만.  
 
의사들이 반정부 투사가 되어가고 있다.

발단은 의대 2000명 증원이지만 이 재앙의 바닥에는 대통령과 정부가 의사를 ‘악마화’한 데 있다. 젊은 의사들, 학생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자신들이 평생 치열하게 노력하며 꿈꾸어 왔던 미래를 대통령이 송두리째 빼앗아 갔고, 심지어 의사를 정부가 맘대로 부릴 수 있는 ‘노예’ 취급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떠났고 의대 정원 증원이 철회되기 전에는 돌아올 생각이 없다. 이제 정부와의 신뢰가 완전히 박살 나 버렸기 때문에 향후 정부가 어떤 조치를 해도 원상복구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 결과 보수 여당을 지지했던 많은 의사들조차 반 정부 투사가 돼가고 있다.
 
지금은 전쟁 중이거나 비상상황도 아니고 어떤 통계를 보아도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은데 대통령과 정부는 ‘2000이라는 숫자는 절대 건드릴 수 없다’ 라고 하면서 의사들을 겁박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2000인가?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온갖 루머가 나돌고 있다. 정부는 참으로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의사들을 노골적으로 악마화 하니까 주위의 아첨꾼들도 덩 달아서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의사들이 돈만 밝힌다고, 수입이 지나치게 많다고, 나쁜 의사들이 너무 많다고, 정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응급실을 지키지 않는다고, 필수의료를 떠나서 돈 벌기 쉽고 편한 일만 찾는다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지 않는다고, 등 등 가지가지 이유를 대면서 의사들을 비난하고 있다.
 
2000이라는 숫자는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면서 정부가 찔끔찔끔 내놓는 대책들도 쥐꼬리 만한 수가인상, 병원손실 지원(그것도 잠시 빌려주는 돈), 빈 껍데기 같은 각종 위원회 설립 등 근본 대책이 아닌, ‘의료개혁’이라는 잘못된 용어를 빙자한 면피용 사탕발림일 뿐이다.

대통령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교육부 장, 차관들이 의사라는 직업의 전문성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입만 벌리면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발언을 하면서 의사들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이들은 의사 면허만 있으면 아무라도 응급실이고 중환자실이고 꽂아 넣으면 다 되는 줄 알고, 이런 비상식적인 강제 근무 명령을 거부하는 젊은 의사들을 징계하겠다고 겁박한다.

급기야 최근에는 다급해진 정부가 한의사와 간호사에게 의사일을 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마도 대통령과 문과 출신 정부 관료들이 의사들이 ‘이권 카르텔’을 만들어서 의료 행위를 ‘독점”한다는, 대단히 비상식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이 의사를 미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의사면허 자체를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초법적 발상이다. 
 
이런 문제들이 점점 더 증폭되고 고착화되는 데에는 언론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정언(政言)유착인지, 주류 언론들이 정부 정책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쓰고 있고 나아가서 극히 일부에 불과한 부도덕한 의사들에 대한 침소봉대식 보도를 통해서 의사 악마화를 더욱 고착시키고 있다. 의사들의 대 언론 대책이 미숙한 점도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뉴스위크가 해마다 집계하는 세계 최고병원 순위에서 50위 안에 4개의 병원이 포함될 정도로 높은 의료의 질을 자랑했다. 뿐만 아니라 전국민 국가의료보험 가입, 지역, 병원, 의사의 선택권이 무제한이고, 진료 회수도 무제한, 낮은 진료비(선진국 의료비의 1/3~1/20에 불과), 최고의 가성비, 집 앞 병,의원에서 예약 없이 전문의를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의료의 접근성 세계 1위, 등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외국에서 배우러 오고, 미국 대통령도 극찬한 의료 시스템이었다. 이를 대통령이 한방에 무너뜨렸다.

우리 국민은 이제껏 얼마나 훌륭한 의료서비스를 편하게 누려왔는지 잘 모른다. 이를 당연 시했다. 그러나 외국에서 병원이나 응급실을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은 안다. 
 
이런 엄청난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법 리스크는 그 어느 선진국에 비해 가혹하고 날로 더 악화하고 있다. 고의성이 없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천문학적인 배상금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사법부의 편견, 왜곡된 온정주의, 전문성 부족으로 야기된 사법부 횡포 때문에 젊은 의사들 뿐 아니라 응급의료 및 필수의료 의사들, 교수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지금 상황은 국가 재앙이다

1.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공의에 크게 의존했던 대학병원에서 중환자관리, 외상, 사고, 응급, 암, 뇌, 심혈관질환 등 중증환자, 분만, 신생아 관리를 담당했던 전공의와 교수들이 떠나는 상황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런 분야의 전문의 신규 배출이 멈추면서 앞으로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고령층, 취약계층의 사망도 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정부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으며 이 모든 것을 의사 잘못이라고 비난한다. 지금 통계를 낼 수는 없으나 이 재앙으로 인한 초과사망이 얼마인지 후에 반드시 밝혀야 하며 책임 소재도 따져야 한다.
 
2. 의학교육이 파괴되고 의사의 질이 폭락할 것이다. 현재 한 학년 3058명을 교육하던 40개 의대에서 내년부터는 (지금 학교를 떠난 3천여명의 1학년 학생들과 내년에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 4천5백명을 합한) 약 7500명을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4500명도 불가능하다. 교수 충원도 교육부 장관의 희망과 달리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부는 막무가내다. 정부는 억지로라도 현재 학교를 떠난 1학년 학생들의 유급을 막아서 7500명을 교육시켜야 하는 상황만은 막으려고 의평원법을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을 입법예고 했다.
 
의평원법은 의학교육을 지키는, 양질의 의사를 배출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런데 교육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에 따르면 교수 숫자가 부족해도, 실습이 부족해도, 출석하지 않아도, 강의 듣지 않아도, 시험을 못 봐도, 국가고시를 볼 수 있고 의사면허를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의 2천명 증원 명령을 어떤 편법, 꼼수를 동원해서라도 관철시키려는 교육부의 눈물겨운 노력이 시행령 입법예고이다. 이 정도면 국가가 아니라 범법자 수준이다.
 
3. 6년 후 한 학년 7500 명이 졸업하면 이들의 졸업 후 수련도 불가능하다. 현재 인턴 자리가 약3천여개인데 갑자기 7500명이 한꺼번에 졸업하면 4500명이 인턴조차 못하고 그 후의 전공의 수련도 불가능하다. 이들이 모두 일반의로 개업하거나 취직을 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게다가 그 후로도 한 학년 7500명이라는 여파는 영원히 지속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해외 토픽 감 난장판을 도대체 누가 ”왜” 일으켰나? 분노에 몸이 떨린다.  
 
4.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대학병원들이 천문학적인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직원들의 무급휴가를 권고하고 간호사, 의료기사, 직원들의 신규채용이 멈추면서 관련 학과를 갓 졸업한 학생들에게도 날벼락이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주변 약국, 식당, 상점들도 엄청난 손실을 보는 등 연쇄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5. 정부가 2000명 증원을 관철시키기 위해 수십조원을 허공에 쏟아 붓겠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낸 세금과 건보료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 빚이 수백조원에 이르고 올해 ‘세수 펑크’가 30조원이라는데, 누가 봐도 미친 짓 아닌가? 이 재정 낭비의 뒷감당은 누가 할 것인가? 건보 재정이 바닥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6. 보건의료 안보도 국방안보와 마찬가지로 나라를 온전히 유지하는데에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모자라는 군의관들을 호주머니 안의 공기돌처럼 마구 빼내서 여기저기 내보내고 있다. 나라를 지키려는 것이 우선인지, 권력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의료가 망가지면 군의료도 망가지고 국방도 무너진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 


1. 의대정원 2천명 증원 계획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2025년부터의 증원 철회가 정부와의 대화의 절대 필수 조건이어야 한다. 만약 2천명 증원이 그대로 실행된다면 대한민국 의료는 완전 폭망할 것이며 다른 어떠한 대책도 무의미하다.
 
2. 국민과 의사 모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중국 문화혁명 때 지식인들이 엄청난 박해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개 돼지가 되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이런 말들을 서로 했다고 한다. 지금은 무조건 버텨야 한다. 국민도 각자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책임 져야 한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병원을 너무 쉽게 너무 자주 갔다. 이제 큰 대학병원에는 웬만한 심각한 병이 아니면 가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는 아프지도 말고 넘어지지 말고 다치지도 말고, 위험한 모험도 하지 말고, 혈압 약, 당뇨 약 잘 챙겨먹고 가끔 동네병원에 가서 혈압도 재 보고, 심전도도 찍어보고, 암 검사도 받을 것을 권한다. 의사들도 너무 과로하지 말아야 한다. 의사들이 건강해야 국민건강을 지킬 수 있다
 
3. 의사들은 이 기회에 진정한 의료개혁을 이루기 위한 답안지를 가지고 있다가 다음 정권창출에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 참에 지난 수십년간 쌓여왔던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닥부터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 상황이 매우 안 좋지만 모처럼 온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정부에 어설프게 끌려가지 말고, 대충 고치려 하지 말고 차라리 완전히 망하게 내버려두고 근본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중요한 의료정책들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정답이 아니더라도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어야 한다.
 
4. 당연한 말이지만 국가지도자를 잘 뽑아야 한다. 항상 그래왔지만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헌법까지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2년 후 대선이 매우 중요하다. 그때까지 국민도, 의사도 잘 버텨야 한다.
 
5. 앞으로 진료받을 의사를 선택할 때에 그 의사가 어느 의대(혹시 한의대인지?), 입학 연도, 졸업 연도, 졸업 후 어떤 수련을 받았는지, 어떤 면허를 가지고 있는지, 등 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입학 연도에 따라 의대교육과 졸업 수 수련과정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2025년 이후 입학한 학생들은 의대교육 뿐 아니라 전공의 수련까지 지속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2014년도 이전에 입학한 학생들은 의대교육과 전공의 수련을 모두 제대로 받은 학년일 것이다. 2014에서 2025년 사이에 입학한 학생들은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를 것이다.

맺는 말

만약 현 정부의 고집대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및 각종 정책들이 실현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이전과 같은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혹시 2년 후 다음 정권이 지금 정부가 추진중인 나쁜 정책들을 모두 취소하고 의대 정원도 원상복구하고 진정한 의미의 의료개혁을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10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가장 걱정되는 피해는 현 정부가 의사들을 ‘악마화’ 하면서 깨어진 의사와 국민 간의 신뢰이다. 신뢰 구축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를 깨는 것은 한 순간이고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 몫이다.
 
만약에 의대정원 2000명 증원과 나쁜 정책들이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 이어진다면 대한민국 의료, 나아가서 대한민국 자체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 틀림없다. 지금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분노의 시간이다. 이런 세계 토픽 감 난장판을 도대체 누가, 왜 만들고 있나?
2년이 빨리 지나가기 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앞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각자도생 하며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조언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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