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대한전공의협의회가 큰 변화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신임 회장이 나오면서 향후 전공의들의 단체행동 로드맵과 회무 방향에 개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재민 신임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향후 대정부와의 관계부터 명확히 정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정부와 여당이 의정합의를 따르지 않을 경우 곧바로 단체행동에 돌입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췄다.
대전협 역사상 첫 인턴 수장인 한재민 회장의 당선은 전공의들뿐만 아니라 의료계 전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향후 범의료계 투쟁위원회 논의나 의정협의체 구성 과정에서 전공의들의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 회장이 전공의 전체의 의견을 회무에 반영한다고 거듭 밝힌 점에서 단체행동이나 수련환경 등 문제에서 기존보다 전공의 입장을 강경하게 대변하는 회무가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선출 과정을 통해 의료계에 던지는 시사점도 있다. 이번 선거는 내부 불협화음을 전체투표를 통해 회원 스스로가 자정작용에 참여,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전협은 회비 납부 여부와 상관없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으며 모든 회원들이 전자투표를 통해 24시간 자유롭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반면 서울시의사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도의사회와 직능단체 선거는 회원 전체투표가 아닌 대의원을 통한 간선제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혁신적인 내부 개혁이 어렵다는 평가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또한 대한의사협회는 회장 선거의 경우 전체투표가 이뤄지긴 하지만 회비 납부가 지연된 회원은 투표권을 얻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난 제40대 의협 회장선거에서 유권자는 전체 의사 13만명 중 4만명에 그쳤고 이중 최대집 회장은 단 6199표를 얻고 당선됐다. 투표율도 48%에 그쳤다. 회장의 대표성을 회복하고 회원들의 관심을 다시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이번 대전협 선거 과정이 참고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주목할 점은 전공의 내부에서도 화합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작은 한재민 회장이다. 한재민 회장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전임 회장이 느꼈을 어려움에 공감하며 경선 과정에서 박지현 전 회장에 대한 서운함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고 말했다. 또한 어느 쪽 편에 서서 편 가르는 등 행동을 삼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후보 시절 전 집행부에 대해 날 선 공격을 서슴지 않았던 것과는 다른 행보다.
사실 이번 단체행동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기존 집행부의 문제도 있었지만 젊은의사 단체행동을 주도하기에 대전협 조직 자체의 역량 부족 문제도 크게 작용했다. 전국 모든 전공의들이 참여하는 야외 집회를 준비하고 소통 창구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정부와 협상을 이어가기에 대전협 조직 규모가 작았다. 실제로 대전협 사무국 직원은 1~2명에 그치고 전 집행부 관계자에 따르면 단체행동 당시 매일 같이 새벽 회의가 진행돼 집행부 모두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으며 만성 인력부족에 시달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체행동 과정에서의 이전 집행부의 과오가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어떤 정권을 봐도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다만 이제는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단 새로운 도약이 필요할 시기라는 것이다. 한재민 회장의 말처럼 이제는 편 가르기를 넘어 화합하고 단결해야 할 때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가의 역할은 과거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에서 그를 해방시키는 것도 아니다.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과거를 이해하고 다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 대전협은 큰 변화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또한 의정합의는 이뤄졌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이 남아있다. 더 이상 과거에 갇혀 있을 시간이 없다. 카의 말처럼 과거는 과거일 뿐 어떤 것도 해방시킬 수 없으며 현재를 이해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8월의 단체행동과 그 과정들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찾고 단결된 새로운 모습으로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 전공의들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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