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신 길 따라 AACR(미국암연구학회)이 오신다

[칼럼] 배진건 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3월이 되니 봄의 기운이 완연하다. 중순이 오니 더 봄을 만끽할 수 있다. 3월을 즐기면서 봄이 가신 길을 따라 미국암연구학회(American Association of Cancer Research, AACR)가 항상 이어진다. 필자가 AACR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1982년 위스콘신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 약학대학에서 Ph. D.를 받고 같은 매디슨 캠퍼스(Madison campus)의 맥아들암연구소(McArdle Laboratory for Cancer Research)로 옮겼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맥아들 암연구소는 당시 AACR을 주도한 연구소였다. 1950년 맥아들 7명의 창립 교수 중 짐 & 엘리자베스 밀러(Jim & Elizabeth Miller) 교수 부부, 바우트웰(Boutwell) 교수와 필자의 포스트닥(Post Doc) 지도교수인 내가 포닥을 시작한 1982년 가을에 재직하셨다. 그 외에도 노벨상 수상자인 테민(Howard Temin) 교수와 폴 버그(Paul Berg)의 대학원생 출신으로 '제한 효소(Restriction Enzyme)의 어머니'로 불리는 자넷 메르츠(Janet E Mertz) 그리고 소장인 간암 전문가 헨리 피토(Henry C. Pitot) 박사가 교수로 재직했다.

필자의 멘토 뮬러 교수는 1982~1983년 AACR 회장으로 봉사했고, 필자는 임기가 끝나는 1983년 봄 샌디에이고 타운 앤드 컨트리 호텔(Town & Country Hotel)에서 열린 74회(th) 암연구학회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됐다. 그 때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미국임상종양학회(American Society of Clinical Oncologist, ASCO)가 먼저 일요일부터 시작해 수요일에 종료하고, AACR은 수요일에 시작하도록 기획해 두 학회의 공통분모로 수요일을 뒀었다. 그러기에 5월 25일 수요일부터 28일 토요일까지였다.

필자는 1983년부터 AACR 정회원이었고 멤버십 번호는 5661번이다. 한국인으로서는 꽤 빠른 번호이지 않을까 싶다. 그 빠른 회원번호 덕분에 해마다 AACR의 한국인 모임을 주관했다. 2001년 외국 출신 학자로는 처음으로 AACR 회장을 맡았고, 오랫동안 MD앤더슨 암센터에서 암 연구를 진행하셨던 고 홍완기 박사님 덕분에 그 방에서 연수하시던 여러 분들도 이 모임에 참석했다. 15년쯤 됐을 때 선배이시고 줄곧 회장인 임종식 선생님께 '저도 이제는 이 직책을 벗을 나이가 됐습니다'고 말씀드리고 다른 분에게 이양한 것이 기억난다.

격세지감인 것은 AACR과 ASCO의 규모가 점점 커져서 세계적인 매머드 학회가 됐다는 점이다. 1998년을 시작으로 AACR Annual Meeting은 해마다 4월에 미국 각처에서, ASCO는 해마다 6월에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고, 매년 참석자 수가 2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의 봄으로 111번째 학회가 비대면으로 진행되며 4월과 5월로 나눠지게 됐다. 2021년도 코로나 덕분에 'Week1: April 10-15; Week2: May 17-21'으로 나눠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지난 3월 11일 페이스북(Facebook)에 'AACR 2021 국내 바이오텍 포스터 초록'이란 제목의 글이 포스팅 됐다. "방대한 AACR 초록들을 살펴보다가 우리나라 회사가 눈에 띄면 반가운 마음에 하나씩 정리했다"고 '박병준'은 적어 놓았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지난해부터 페북에 관심을 끄는 포스팅으로 이름을 알게 됐다. 특히 임상 데이터에 관해 많이 포스팅하던 것들이 눈에 띄었기에 이분은 아무래도 제가 모르는 젊은 의사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3월 9일 포스팅을 보니 '올리패스 비마약성 진통제 후보물질 OLP-1002 호주 임상 1b은 어떻게 이해해야 될 것인가?'라는 유튜브영상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유튜버였다. 가치 투자를 위한 신약 길라잡이 '가신길TV'를 통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임상결과를 다르게 보는 유튜버, 더 멋진 말로는 '크리에이터'다. 이렇게 빠르게 올리패스 사항을 정리하게 된 이유도 존재했다. 새로운 상황이 일어나기 바로 며칠 전에 정신 대표와 가진 인터뷰가 유튜브에 포스팅됐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상하게도 드라마는 엄청 좋아하지만 스마트폰을 찾아가며 영상 보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기에 유튜브를 잘 대하지 않았지만 올리패스 임상 소식을 넘길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올리패스 대표이사 정신 박사는 필자와 전 직장 '쉐링프라우'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정 박사는 콜럼비아에서 학위를 마치고 곧장 입사해 2년간 같은 시기에 같은 빌딩에서 지냈다. 

3월 11일 '에이비엘, AACR서 4-1BB 플랫폼 전임상 발표'라는 기사도 보이기 시작한다. 파멥신, 메디팩토, 압타바이오, 앱클론, 카나프, 지놈앤컴퍼니 등 여러 바이오 회사들의 뉴스가 연이어 나타난다. 이유는 AACR에서 초록을 3월 10일 오픈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박 크리에이터는 국내 기업 포스터 제목을 다 나열해줬다. 그 방대한 AACR 초록들이 열리자 마자 이틀을 꼬박 초록들을 읽는데 보냈다고 한다. 그러니 초록들에 포함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던 것 같다. 그는 "특별히 면역 항암 I-O 연구에서 가장 많이 보인 키워드는 'Conditionally activated', 'Bispecific, Trispecific'이다. 그러기에 면역 항암 분야에서는 이중(삼중) 항체가 주를 이루고 있는 동향을 알 수 있다"고 다른 포스팅에 적었다.

왜 AACR이 오랫동안 학회로서 112년을 이어왔을까? AACR은 암 연구자들이 자기가 현재 진행하는 과학을 주재로 소통을 하는 장이다. 내가 진행하는 암 연구를 서로 소개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열리는 학회나 Cancer Research와 같은 학회에서 발간되는 저널을 통해 다른 암 연구자들과 소통을 한다. 연구자들에게는 과학이 매일 매일의 일상이다. 그 일상의 한 조각을 다른 연구자와 공유하는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 연구는 외롭기 때문이다. 그 소통을 통해 새로운 과학의 세계로 나가고 싶기 때문이다.

과학자들도 전문적인 내용을 어떻게 비전문가와 소통할 것인가? 그것도 고민해야 한다. 연구 이야기를 '업계인'이 아닌 사람과 하기는 쉽지 않다. 내 연구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잠재투자자에게 자기 사업의 유망성을 어필하는 '엘리베이터 스피치(Elevator speech)' 준비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잠재투자자는 당연히 내가 어떤 스타트업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인데, 30초라는 짧은 시간에 내 사업을 쉽게 이해시키면서도 핵심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스타트업의 목적은 과학을 비즈니스화 하는 것이다. 과학을 어떻게 비지니스화 할 것인가? 둘을 이어주기 위해서는 '브릿지'가 있어야 한다. 'Science to Business', S2B는 아무리 좋은 노벨상 사이언스라도 현금화할 수가 없다. 사이언스와 비지니스 사이에 헤엄쳐 건널 수 없는 바다가 있으면 상어가 득실 득실하고, 강이 존재한다면 악어가 그 강을 지배한다. 브릿지가 있어야 그 바다나 강을 건너 '인류의 건강'에 이바지한다. 사람을 살리는 신약개발이 가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은 잠재투자자와의 소통이 필요하다. 치열한 전략과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연구자들도 이런 연습을 해본다면, 실제로 써먹기에 유용함은 물론, 무엇이 내 연구의 핵심인지, 어떤 내용이 설명하기 어려운지, 어떤 식으로 설명하면 더 이해시키기 쉬운지, 어떤 내용이 상대의 이목을 끌 수 있을지 등을 제3자의 입장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AACR은 분명히 암연구의 기초 과학을 논의하는 토론의 자리다. 그런데 일부 우리나라 회사들은 기초 암 연구 초록 하나 내는 것을 굉장한 성과로 과대 포장해 주가가 올라가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을 노출한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투자자들을 위한 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AACR에 초록을 제출한 기업들이 같이 모여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을 공개하는 그런 장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만일 항암이라도 분야가 조금 다르다면 공통점을 모아서 몇 그룹으로 나눠 공유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혹은 회사가) 초록에 제출한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이라 좌도 우도 아니고 중립이다. 이 데이터를 다른 연구자나 투자자가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보석으로 변할 수도 있다.

2021년 봄 아직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지만 언제 어디서든 즐겁고 자유롭게 자기가 (혹은 회사가) 진행하는 연구주제에 대해 '토론(디스커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 111년 전 AACR이 시작했듯이 그런 ‘개방적 사고(오픈 마인드)’가 대한민국 스타트업들이 성장하기 위하여 정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신길TV의 박 크리에이터는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비전공자이고 일반인이다. 그러나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그는 전문가다. 비전공자인 일반인들이 가치 있는 신약개발 시장에 올바르게 투자하기 위해서도 이런 장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윈-윈(Win-Win) 게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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